6년여 투병 끝 78세로 생 마감
1987년 삼성 2대 회장 취임 후
세계적 초일류기업 ‘성공신화’

1987년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에서 취임사하는 이건희 회장.  /연합뉴스
1987년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에서 취임사하는 이건희 회장. /연합뉴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관련기사 3, 4면>

고인(故人)은 지난 2014년 5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당시 자택 인근의 순천향대학 서울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져 심혈관을 넓혀주는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저체온 치료와 진정 치료를 받으면서 심폐기능이 정상을 되찾았고, 입원 보름 만에 혼수상태에서 회복했다. 그러나 고인은 재활치료에도 불구하고 6년 5개월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고인은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건희 회장은 경남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1947년 상경해 학교를 다녔고 19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부친의 엄명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

어린시절 영화 감상과 애완견 기르기 등에 심취했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사대부고 재학시절에는 레슬링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1966년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와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며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모색했고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삼성의 해외사업추진위원장을 맡아 유공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쓰라린 실패를 맛본 이 회장은 삼성 경영권을 승계하기까지 20여년간 우여곡절을 겪었다. 1987년 이병철 창업주 별세 이후 그룹회장에 취임한 고인은 1993년 신경영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이 회장은 삼성가 분할이 거의 완료된 뒤 삼성전자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작심발언으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이 회장은 남다른 집념으로 삼성을 키웠다. 1987년 1조원이던 시가총액을 2012년 390조원대로 40배나 성장시켰고 총자산 500조원의 외형을 만들었다. 2006년 글로벌 TV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시장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개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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