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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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이면 “혹시나”하다가 “역시나”로 끝나는 행사가 있다. 노벨상 수상식이 그것이다. 미국, 영국들이 수백개를 받았고 일본도 수십개를 받은 노벨상을 한국은 평화상이라는 정치적인 상 한 개를 받은 것 이외에는 단 한 개도 받지 못하고 있다.

어떤 기자는 만년 하위 팀 야구팬들이 ‘가을잔치’ 포스트시즌을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매년 가을 노벨상 발표를 지켜보는 기분이 딱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매년 “혹시나”의 신드롬은 계속된다.

몇 년 전에는 한국의 시인 한 명이 매년 “혹시나”하다가 “역시나”로 끝난 적이 있는데 금년에는 과학분야에서 “혹시나”로 몸살을 앓았다. 노벨상 수상이 유력한 우수 연구자를 선정, 발표하는 학술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를 화학상 후보로 점찍었기 때문이다. 현 교수 연구실은 기자들로 붐비고, 심지어 기자들은 현 교수의 고향집에까지 몰려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국 “역시나”로 끝났다.

노벨상을 수상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거론할 수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 중진국들은 거의 다 포함돼 있고 심지어 우리보다 뒤진다는 인도, 파키스탄 등 동양의 여러 나라들이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한국만 유일하게 빠져있는 상태이다. 이제 “역시나”를 멈출 수 있을까? “해법이 없으면 해법을 만들어서 답을 구하면 된다”는 창의적인 학습을 통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해법을 스스로 만드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그들에 비해 한국에서 수재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창의성에서 확실히 뒤지고 있다.

과연 초·중·고등학교에서 창의적으로 길러지지 않은 학생들을, 대학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 노벨상을 받게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과학계는 숱한 외풍에 시달린다. 정부가 갈리면 시작되는 과학계 압박과 사임 압박 열풍. 2년 전 정부는 국가연구비를 횡령하고 채용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KAIST 총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과학계에선 ‘정치적 숙청’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무혐의 처분으로 일단락됐지만 정부의 반성은 안보인다.

카이스트 총장이 이러한 압력을 받은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전 정부산하에서 임명된 수십명의 연구원 수장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몰아냈다. 스스로 안나가면 감사라는 명목으로 들들 볶아서 내보내는 건 정부가 갈릴 때면 일어나는 정기 행사이다.

창의력이 부족한 교육 그리고 정치에 휘둘리는 과학계 이 두가지 만으로도 노벨상이 안나오는 이유는 설명된다. 이제 “역시나”로 끝나지 않으려면 교육의 방식과 과학계의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 제발 부탁한다. 정치논리로 과학계를 흔들지 말라. 교육 개혁은 다소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과학계를 흔드는 일은 즉시 멈출 수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