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문화의 상징과 공간 (5) 영일만과 동빈내항

영일만 전경
영일만 전경

포항을 포항답게 하는 특징적인 환경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영일만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영일만의 물줄기가 지나가며 만들어진 동빈내항을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영일만과 동빈내항은 지역을 이루는 한 부분임을 넘어 지역의 본질을 규정하는 어떤 ‘틀’과 같다. 그리고 이 틀에는 다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이 독특함을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영일만 일대는 맑고 깊고도 차가운 바닷물을 육지 깊숙이 머금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바다와 육지의 정수가 가장 긴밀하게 만나는 곳으로, 그로부터 모든 신비와 독특함이 나타나고 있다.

바다와 육지의 교류라 하면 대개 서해안처럼 얕은 바다가 육지 깊숙이 들어온 리아스식 해안이나 남해안처럼 여러 개의 섬과 만이 흩어져 있는 해안을 떠올리게 된다. 그에 비해 동해안은 단조로운 해안선, 급격히 깊어지는 수심으로 인해 바다와 육지가 선명하게 나뉘는 곳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영일만은 서해안, 남해안은 물론 다른 동해안과도 사뭇 다르다. 바다와 육지가 끊임없이 서로 교류하고 합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 어떤 곳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태초부터 영일만은 바다는 육지로 돌진하고, 육지는 바다를 찌르고 나아가는 ‘상생의 고장’

설화 ‘연오랑세오녀’·전설 ‘정수 고래이야기’는 육지와 바다의 교류 알려주는 상징적 의미 커

50년 전 시작된 제철산업은 산업화 이끌었지만 도시개발 뒤켠의 어두운 그림자도 만들어와

해양도시 명운 걸린 송도·동빈내항 복원은 도심재생 구심점… 시민·전문가 활발한 참여 절실

동빈내항 전경
동빈내항 전경

□ ‘바다다운 바다’·‘육지다운 육지’가 공존하는 곳

단조롭게 내려오던 동해안이 영일만에 이르러 단 한 번 크게 요동친다. 바다는 묵직하게 육지를 향해 돌진하고, 육지는 바다를 찌르고 나아간다. 우리가 보는 영일만의 모습이다. 그 형태도 심상치 않다. 바다는 거대한 바위 같은 모양으로 육지로 들어와 있고, 육지는 오히려 굽이치는 파도의 물결 같은 모습으로 바다로 몰아치고 있다. 바다와 육지가 서로를 탐한 나머지 서로의 모습마저 흉내 내면서 태극의 음과 양처럼 서로 교합하기를 애쓰고 있는 형상이 아닐까.

바다와 육지가 교류하되 그 경계를 흐리면서 구분 없이 섞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성격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며 서로를 향해 들어가는 모습이다. 그래서 가장 ‘바다다운 바다’와 가장 ‘육지다운 육지’가 공존하고, 바다의 정수와 육지의 정수가 제대로 교감하는 장소인 것이다. 영일만은 육지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바다 특유의 차가움과 깊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호미곶도 바다를 향해 한껏 나아가 있지만 거친 암반과 구릉이라는 육지의 본질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는다. 바다와 육지가 그 성깔은 한 치도 포기하지 않으며 서로를 향한 맹렬한 열정을 보이는 곳, 바로 영일만인 것이다. 이렇게 바다와 육지의 교류라는 지역의 특성은 태초부터 형성돼 온 틀에서부터 너무도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 설화와 전설이 암시하는 것

‘바다와 육지의 교류’, 그리고 ‘서로를 향해 나아감’을 새기고 있는 태초의 틀은 지역의 설화와 전설에서도 은연중에 드러난다. 영일만의 고래 이야기, 연오랑세오녀 이야기가 그러하다. 영일만 주변의 고대인들은 고래를 소나 말 같이 친근하게 여기고 다루면서 이를 통해 문명을 형성해갔고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시에 수백 마리의 고래가 뛰노는 장관이 영일만 일대에서 펼쳐진 기록이 남아 있다. 저 깊고도 차가운 대양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래가 북태평양을 돌고 돌아 영일만에서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차갑고 푸른 바다이면서도 육지로 둘러싸인 영일만을 포근한 요람처럼 느껴 여기에서 새끼를 낳았다. 영일만은 수많은 북태평양 고래들의 고향 마을인 것이다. 이 고래라는 동물은 또 어떠한가. 심해와 수면을 넘나드는 바다의 주연과 같은 존재이지만, 또한 끊임없이 육지를 갈망하는 존재이다.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육지 동물처럼 공기 중에서 숨을 내쉰다. 사람처럼 의사소통을 하는가 하면, 육지와 사람을 좋아해 일부러 연안을 찾아오기도 한다. 바다의 존재이면서도 육지의 삶을 늘 동경하는 고래는 그래서 영일만 그 자체인 것이다.

연오랑세오녀 설화도 ‘육지와 바다의 교류’라는 차원에서 읽을 때,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해진다. 이 고대의 남녀는 당대 육지문명의 정수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육지문명의 절정인 철기문화를 구현하고 있던 고대의 창조계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육지의 안온한 삶에 머무르길 원치 않았다. 수평선 너머에서 떠오르는 해와 달을 보며 바다를 소망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바다로 나아가 바다와 합일된 해양문명의 씨앗이 되기를 선택한다. 그들이 바다로 나아갈 때 육지의 한 부분인 큰 돌을 타고 갔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바다로 나아가면서도 돌과 철로 대표되는 육지문명의 정수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연오랑세오녀 설화는 육지와 바다의 결합이라는 태초의 틀이 의인화된 결과이고, 영일만이 어떤 곳인가를 알려주는 상징적 근거가 된다.

육지를 갈망하는 바다의 정수 고래, 그리고 육지문명의 정수이면서 해 뜨는 바다를 소망한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는 이처럼 연속된 암시를 통해 영일만이 어떠한 곳인지를 설명해준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기 자리 잡은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동빈내항의 겨울
동빈내항의 겨울

□ 제철, 바다와 육지의 교류라는 태초의 틀에 부합하는 산업

우리 민족이 파도가 넘실대는 대양보다는 안정적인 내륙을, 해안보다는 중심부를 선호하는 역사를 선택하면서 어느덧 고래는 기억에서 사라졌다. 연오랑세오녀도 바다를 갈망한 고대인이 아닌, 다른 육지문명을 개척한 선구자로 해석되었다. 우리에게 바다는 교류와 합일의 대상이 아닌, 어두운 안개가 드리워져 언제 외세가 침략해올지 모르는, 무서운 경계가 된 것이다. 우리는 바다를 잃었고, 바다를 두려워하는 내륙인에 머물러야 했다.

다시 현실로 와서 오늘날의 포항과 영일만을 바라본다. 바다와 교류한 기억을 잃었다고 하지만, 태초부터 형성된 틀은 그렇게 쉽사리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금 바다와 교류하며 나아가는 움직임이 영일만에서 시작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50년 전 시작돼 산업화를 이끌어 온 제철산업이 그러한 움직임의 상징이다. 앞선 철기문명을 이웃 나라들과 나눈다는 점에서 연오랑세오녀의 재림에 비견되기도 하지만, 제철은 바다와 육지의 교류라는 태초의 틀에 가장 잘 부합하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가장 육지다운 산물인 철광과 가장 바다다운 영일만 심연이 만나서 빚어진 산업이기 때문이다. 부두에 가득 쌓인 철광석은 영일만 심연의 물로 정제돼 단단하고 빛나는 철제로 완성돼 간다. 그리고는 해 뜨는 바닷길을 따라 나아가 세계 곳곳의 철기문명으로 다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 포항, 해양도시에 걸맞은 입지 요건 갖춰

이제는 지역을 만들어가는 정책도 태초부터 주어진 틀에 조금씩 부응하는 것 같다.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다시금 시민들에게 바다를 향한 소망을 조금씩 불어넣고 있다. 다섯 개의 섬이 모두 복원된 것은 아니지만, 도심부를 어루만지는 바닷길이 살아나면서 송도도 그 명칭의 의미를 되찾았다. 빈집으로 내버려두고 떠나야 했던 송도와 동빈내항에 햇빛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마을이 가장 어두운 곳이 되어야 했던 도시개발의 아이러니가 조금씩 극복되고 있다. 바다와 연결된 하천이 돌아오는 것도 좋은 조짐이다. 콘크리트 아래 어디쯤 지나가던 과거의 하천들이 이제 다시 우리 삶터 속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재작년 해양수산부 지원으로 포항을 포함한 우리나라 유수의 해양도시를 비교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주제는 어느 도시가 보다 바다와 잘 결합돼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바다와 잘 결합된 도시는 경관, 활용도 등 여러 면에서 유리하고 또 오늘날의 도시재생에서도 내륙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을 가진다. 도시와 면한 바닷가는 과거와 같이 산업, 물류 기능만이 아닌 다양한 시너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심정적으로 느껴 온 포항의 모습이 차가운 숫자로 표현될 객관적 결과에서도 진실로 나타날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감동적(?)이었다. 포항과 영일만은 바다와 도시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도심부 깊이 들어온 영일만, 그 자체로 인해 포항은 해양도시에 걸맞은 입지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바다와 육지의 교류라는 태초의 틀, 그것이 추상적 상징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 우리 손에 놓인 해양도시의 미래

송도 재생사업과 함께 도심부 해안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송도와 동빈내항은 변두리가 아니다. 바다와 육지를 포함한 영일만권 전체의 중심지이다. 해양도시로의 재생과 발전을 위한 명운이 걸린 곳이 아닐 수 없다. 차분히 다진 계획과 성실한 추진, 시민·전문가의 활발한 참여로 진행돼 포항이 해양도시로 전환하는 데 큰 획이 그려졌으면 한다. 모든 사업에서 선행돼야 할 것은 소명의식이다.

그리고 지역의 틀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에 대한 공유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인식이 없다면 불협화음 속에 방황하다 현실 안주에 그치는 개발사업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바다와 육지의 정수가 가장 강렬하게 맞닿고 있는 곳, 그에 맞는 인식과 문화를 키워갈 때 해양도시의 미래는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사진/안성용>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글/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서울대 도시계획학 박사, 건축사,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서울의 도시구조와 기능체계’ 등 저서와 논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