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만나는 추석 특선영화

코로나19가 삶의 방식을 대부분 바꿔놓았다. 책은 도서관에서 읽어보고 샀고, 영화는 극장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봐야 제대로 된 감동을 받았었다. 그러던 것이 도서관도 영화관도 가는 일이 힘들어 책을 사는 일도 영화 직관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우리에게 지상파와 케이블, EBS, 넷플릭스 같은 채널에서 추석 특선 영화를 편성했다. 문체부에서는 ‘집콕문화생활’이라는 제목으로 문화예술을 온라인으로 즐기도록 중계하고 있다. 한국고전영화 357편을 지난 28일부터 볼 수 있게 올려 놓고 팬들을 기다린다. 그 외에도 사서가 추천해주는 도서관과 어린이 프로그램부터 다양한 정보가 들어 있으니 한 번씩 클릭해서 서핑해봐도 좋을 것이다.
 

△‘야구소녀’(최윤태 감독)

문체부 홈페이지에서 여러 분야의 정보를 뒤지다 영화 ‘야구소녀’에 대한 다양한 자료도 포스팅되어 있어 반가웠다.

한국영상자료원에 영화의 소품이 기증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다. 관중 없는 올해 야구장, 안방에서만 야구를 즐겨야 한다. 이런 내게 야구 영화는 반가움 그 자체이다. 영화에 사용된 모자, 글러브, 스피드건 같은 소품과 영화 찍을 때 사용한 촬영 슬레이트와 주인공 수인(이주영) 선수의 개인 기록표와 감독의 메모까지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최초의 여자 야구 선수였던 안향미 선수는 등번호가 1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두 번째라는 의미로 수인의 등번호를 2번으로 하려 했으나 그걸 누가 알기나 할까 싶어 감독은 아내의 생일인 29번을 주인공의 등번호로 낙점했다. 감독 역시 운동할 때 운동복에 29번을 새겨넣었다니 아내 사랑이 깊은 사람이다. 이런 영화의 소소한 부분까지 알려주니 야구소녀를 보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했다.

 

△‘기생충’(봉준호 감독)

tvN은 10월 3일 ‘기생충’을 최초로 TV에서 방영한다. “악인이 없는데 비극이고, 광대가 없는데 희극이다.”라고 봉준호 감독은 명언을 남겼다. 어렵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심오한 말인데 영화를 보고 나면 감독의 저 말에 수긍이 가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은 영화여서 봉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2만5천762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일까? 바로 3천억 원이 넘는다. 이에 비해 영화 속 주인공 송강호의 가족 네 명은 모두 백수이다. 반지하(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존재한다.)에 살면서 모두 직업이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가난한 데는 이유가 있다지만 가난이 어디 개인만의 잘못이던가. 가난은 개인이 열심히 해서 벗어나기엔 늘 역부족이다. 부자 또한 자수성가할 때 비빌 언덕이 있었을 것이다. 태어나보니 가난한 집이었거나 눈떠보니 부자 할아버지의 손자였을 뿐이다. 감독의 연출도 뛰어났고, 배우들 모두의 연기 또한 좋았다. 올 2월, 우리 모두는 아카데미 시상식 생중계를 지켜보았다. 봉준호 감독이 한국말로 수상소감을 이야기하는 것을 번역 없이 들으며 한국인인 게 자랑스러웠다.

봉준호라는 이름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고, 세계인들이 짜파구리를 끓이는 진풍경이 유튜브에 떠돌았다. 2월 한 달은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이었다. 아직 직관 못 한 분들은 추석 연휴 끝부분인 개천절에 감동의 물결에 동참하길 바란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미미레더 감독)

미국 진보 진영의 아이콘이자 선구적 페미니스트였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9월18일(현지시간) 워싱턴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그녀는 길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새롭게 길을 내야 하니 일생 전체가 고난이고 넘어야 할 산이었다. 1956년 500명의 입학생 중 9명의 여성 중 한 명으로 하버드 법대에 입학하였다. (당시는 하버드 법대 학장이 “남자 자리를 차지한” 것에 대해 여학생들을 나무랐던 시절이었다) 이후 컬럼비아 법대로 편입하여 또다시 수석 졸업을 하였으나, 뉴욕의 어느 법률 사무소에서도 여성을 고용하지 않았다.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긴즈버그는 가르치는 직업을 선택하였고, 컬럼비아 법대의 첫 번째 종신직 여교수가 되었다. 1993년 미 대법관 임명 이후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였으며 최근 미 대법원이 보수 성향으로 기울자 더더욱 자주, 명확히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무엇보다 그는 법률가로서 미국 역사상 큰 업적을 남겼다. 1970년대 시민자유연맹 활동 시절에는 성차별적인 법률 개정과 임신 여성의 권리 옹호에 집중하였다. 1975년에는 아내를 잃은 남편들도 남편을 잃은 아내가 받는 동일한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변론하며, 남성들에게도 아이를 돌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임신 한 여성에게도 실업자 혜택을 제공할 것과 여성의 재생산권리 옹호에 앞장섰다. 이 시기에 긴즈버그와 동료들은 미 대법원에 6번의 소송을 제기하여 5번의 승소를 끌어냈다. 대법관 임명 이후 긴즈버그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판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버지니아군사학교에 여학생 입학을 허가하도록 한 것이다. 판결문에서 그는 “여성은 개인의 재능과 역량에 따라 사회에 참여하고 이바지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연방대법관 중에 여성이 몇 명이어야 하냐는 질문에 그녀는 9명 전원이라고 했다. 전원이 남자일 때는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았다고 말이다. 영화는 그녀의 이런 투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았다. 그녀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골랐다.
 

△‘봉오동 전투’(원신연 감독)

‘차이 나는 클라스’ 169회 8월 11일 방송은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의를 돌려보고 영화를 보면 우리 독립군들이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어떻게 버티며 일궈낸 승리인지 가슴에 와닿을 것이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신주백 소장의 강의가 아주 특별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있었던 전투이다. 실제 고증에 충실하게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봉오동 전투의 중요한 전략이 매복과 유인이었다고 한다. 이장하역의 류준열은 영화 내내 뛰어다니고 있다. 이 전투는 새벽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에 일어났던 일이다. 몇 날에 걸쳐서 치러진 거겠지 했던 내 예상을 강사님이 확 깨주었다.

전략이 뛰어난 독립군이 일본군과 첫 번째 싸움에서 거둔 값진 승리였다. 중국 패키지여행 코스에 백두산, 청산리, 봉오동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 봉오동은 큰 골짜기여서 조선인들이 물을 따라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독립군들이 그리로 모였기에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최진동의 대한군무도독부, 안무의 국민회군,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이흥수의 신민단이 모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했다. 홍범도가 전략 전술을 짜서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분의 이름보다 김좌진 장군의 이름만 기억하는 이유는 그분이 소련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소개된 영화 외에도 MBC에서는 ‘스윙키즈’, ‘감쪽같은 그녀’, ‘천문’을 준비했고 EBS에서는 ‘명량’, 케이블에서는 ‘퍼팩트 맨’, ‘정직한 후보’를 볼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는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서빌리티’, ‘작은 아씨들’(2020년판)을 개봉했다. 새로 극장에 걸리는 영화로는 ‘검객’, ‘디바’, ‘국제수사’,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돌멩이’, ‘담보’ 같은 한국 영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김순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