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안온한 기운이 흐르는 관암사 대웅전. 관암사는 대구 동구 갓바위로 350에 위치해 있다.

네비게이션이 팔공산 갓바위 오르는 길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로 나를 안내할 때까지 나는 관암사를 기억하지 못했다. 무심히 오르내리던 길목에 배경처럼 서 있던 절, 언제나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경내를 지나다니기만 했던 곳이었다.

관봉은 내 젊은 날 즐겨 찾던 등산코스였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사색이 필요할 때면 그곳을 찾곤 했지만 절은 한결같이 침묵에 싸여 있었다.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고 이제 험난한 돌계단이 이어질거라는 묵시적인 길 안내만으로 충실했다. 모처럼 추억을 더듬으며 산길을 오른다.

폐사의 비운으로 방치된 절터에서 한국 불교 태고종 제 14대 종정 백암 대종사가 기도 중 불상을 발견하여 1962년 관암사가 창건됐다. 팔공산 관봉의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갓바위 아래에 자리하여 관암사라 지었다고 한다. 갓바위 석조약사여래좌상은 불교 미술적 가치도 높으며,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영험함이 알려져 전국 각지에서 불자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백암 대종사가 중생의 안식처를 만들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갓바위까지 손수 돌을 져 나르며 길을 닦은 업적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륵불로 불리던 갓바위 부처님을 약사여래불로 명명하여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로 등재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 한 것도 백암 대종사의 원력에 의해서다. 하지만 1970년 소유권분쟁에 휘말려 지금은 관리권이 선본사에 넘어가 있는 상태라고 한다.

자신과 중생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서원은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자비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좌선의 수행보다 스스로의 노고로 남을 기쁘게 하는 실천하는 구도자, 그가 겪었을 아픔과 좌절 앞에서 잠시 숙연해진다. 지금은 새롭게 정비된 돌계단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숨긴 채 사람들을 맞을 뿐이다.

오로지 개인의 소원 성취를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오르는 불자들과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만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해탈하신 부처님의 삶이 묘하게 교차된다. 참된 종교는 자기 성찰과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서 시작되어야 하리라. 갓바위 오르는 돌계단이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구도의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관암사가 오늘은 목적지가 되어 내 앞에서 위풍당당하다. 2대 주지 혜공 화상이 2010년 대웅전 등을 낙성함으로써 지금은 관음전, 지장전 등 12동의 전각이 모여 제대로 된 전통가람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십여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마주 선 감회가 남다르다.

고요하던 사찰은 활짝 문을 열고 큰 품으로 대중을 맞고 있다. 몇 개의 벤치와 공양간 쪽마루에 걸터앉아 늦은 오후의 피로를 풀고 있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잡힌다.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와 관암사에 이르면 하산의 안도감이 밀려들던 곳, 그들의 땀자국 위로 부처님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공손히 합장한 후 돌계단을 올라 대웅전으로 향한다. 관음전과 지장전이 좌우로 든든하고 대웅전 앞을 지키는 자귀나무 두 그루도 눈길을 끈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첫인상과 달리 대웅전 쪽에서 내려다본 관암사는 위엄과 격조가 느껴진다. 가을 공기가 머무는 법당에서 처사님 홀로 명상 중이다. 석양으로 떨어지는 햇살이 법당문을 비추고, 처사님은 대웅전과 하나가 되어 미동도 않는다. 그림 같은 풍경이다.

나도 좌복 대신 요가용 매트를 깔고 백팔 배를 시작한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느라 또다시 허리 통증이 신호를 보내오지만 차분히 마음을 다스린다. 윤이 나는 마룻바닥, 눈 꼬리가 약간 올라간 부처님의 이색적인 미소조차 낯설지가 않다. 비로소 관암사는 내게 새로운 출발점이거나 성장점이 되어 손을 내밀고 있다.

잠시 가부좌를 하고 명상에 잠긴다. 맑고 안온한 기운이 흐르는 법당에는 하오의 여유로움이 밀려들고, 팔공산 정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관암사의 역동성이 느껴진다. 쪽마루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도 언젠가는 인간의 심성 안에 불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처님과 산사를 사랑하게 되리라.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종교를 떠나 팔공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는 관암사의 선행이 햇살보다 곱다. 약수를 마시고 법당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저 깊숙한 상처가 아무는 소리가 들린다. 십여 년 전 조심스럽게 지나다니던, 그 까칠하던 문턱은 사라지고, 지금은 사람의 향기와 부처님의 향기 가득한 도량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갓바위 부처님을 시봉했던 사찰, 관암사만이 지닌 자존심이다.

태고종 사찰인 관암사의 가슴 넉넉한 보시가 흥건한 온기로 피어나고 있다. 자타불이(自他不二), 남을 위하는 일이 곧 나를 위하는 일임을 우리는 알지만 잊고 산다. 불국정토는 자비로운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지리라 믿는다. 인향(人香)과 법향(法香)이 머무는 관암사의 새로운 서원인 불국정토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한다.

행여 갓바위 오르는 길 있거든 잠시 관암사에서 쉬어 가라. 발걸음이 법당까지 허락하지 않는다면 두 손 모아 합장이라도 하고 가던 길을 가라. 그대 안이 환해지고 지혜의 강물이 서서히 그대를 휘돌아 나갈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