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정리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책을 지니지 않으려고 합니다. 주어진 책꽂이 안에서만 책이 놀게 하고 덤으로 쌓이지 않게 신경 씁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간엔 인터넷 서점을 통해 책을 사서만 읽었습니다. 집안은 온통 책 세상 같았습니다. 덜어내는 연습을 하면서 책 사는 습관도 줄었습니다. 불어난 신간은 중고서점에 팔거나 이웃에 나눔을 합니다. 그래도 책꽂이는 떠나보내기 힘든 책들로 무질서하기만 합니다.

오래된 책 한 권에 눈길이 갑니다. ‘도덕교육의 파시즘’. 교육방송에서 그 책에 대해 토론한 걸 시청한 적이 있었지요. 패널이자 저자인 김상봉 교수의 애정 어린 비판. 그는 한국 사회의 일보전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로 도덕교육을 꼽았습니다. 우리의 중고교 도덕 교과서는 낡은 노예적 가치관을 주입하는 선봉장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참된 자유인을 양성하는 게 아니라, 위계적 노예를 학습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개인의 자발성을 묶어놓은 채, 획일화된 질서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려 하는 면이 없진 않았지요. 테크놀러지의 첨단을 향유하는 21세기 현대인을 교육하는 방법으론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의 예절교육은 약자가 강자에게 바치는 일방적인 헌사를 의미한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절에 관한한 강자의 그 어떤 역할도 약자만큼 구체성과 강제성을 띠지는 않습니다. 공자가 강조하는 예의 본질이 인간 심성의 참된 교류에 있지 결코 위계의 선후를 따지는 치졸함에 있지는 않을 터인데 말입니다. 국가가 관장하는 이러한 지속적이고도 뭉근한 교육 덕(?)에 약자들은 근거 없는 주눅과 스트레스를 원치 않는 선물로 떠안았습니다. 유교문화와 일제 강점기도 모자라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이러한 노예도덕은 더 깊은 뿌리를 내렸지요.

우리 유가 사상의 최대 목표는 체제 유지였습니다. 그 정당성을 부여 받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덕목이 충효일 수밖에 없었지요. 자연스레 높은 자를 위한 헌사로써 예의와 도덕은 필요했습니다. 충효의 보조 항목으로서 이 두 덕목이 따라붙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구요. 원래 예절이란, 마음의 진정성이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하지 않았던가요. 갑의 위치라 해서 진정성과 형식에 예외가 있진 않을 테지요. ‘인사에 선후 없다’라는 말이 예절의 본류였을 터인데, 실제 상황에서는 그것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지요. 체제 유지 하에서는 낮은 자를 위한 배려로써의 예의와 도덕은 언제나 묻히기 일쑤였지요. 그리하여 예절은 그저 강자 앞에서 표하는 약자의 리액션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 소설가

예절에서만큼은 지금도 인간 동격 개념을 적용하기엔 무리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체제 유지에 원활한 시민을 기르는 게 우리 도덕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되어버렸다고 김상봉 교수는 우려합니다. 자유와 개인적 가치는 국가와 위계질서 앞에서는 언제나 나쁜 것이 되거나 하위인 개념으로 간주됩니다. 이때 종속의 마땅한 액션으로 예의와 도덕이란 덕목을 활용하는 것이지요. 도덕 교육이야말로 권력자와 집단 -그것이 아무리 부당한 존재라 할지라도- 이 약자와 개인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해 줬지요. 물론 무서운 것은, 약자이고 피해자였던 시민들이 집단이 될 때는 어느새 권력자의 위치로 가 있게 된다는 것이겠지만요.

도덕 교과서의 이러한 파시즘적인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보는 시각에서도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가혹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한데도 가부장적인 질서에 익숙해진 우리 여성들 스스로 그 노예교육의 전면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십여 년 전 딸이 중학생이었던 시절, 도덕 교과서 예절 편의 서술 방식이 떠오릅니다. 결혼 제도 하의 여성을 대하는 시각이 너무 전근대적으로 묘사된 것에 충격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기혼 여성이 시댁 식구들을 칭하는 모습을 예로 들까요. 아가씨, 도련님, 서방님 등과 같이 불러야 한다고 교과서에 명시 되어 있었습니다. 문득 아직도 그런가 싶어 도덕 선생님인 친구에게 물어 봤습니다. 다행히 호칭과 관련된 부분은 2015년 개정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 없어졌다고 합니다. 요즘은 양성 평등 부분을 강조하고, 가족 간의 질서보다는 갈등 해소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바뀌었다네요. 뒷북이지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덕 교과서가 점점 진화되고 있으니 ‘도덕교육의 파시즘’도 개정판이 나올 때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새 책이 나오면 주저 없이 달려가 앞줄 서는 독자가 되겠습니다. 물론 그 책은 중고책으로 팔리기보단 오래오래 책꽂이에 꽂힐 확률도 높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