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무

때 되면 누구에나 밀려드는 시간의 밀물

그 또한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물에 잠긴 자리마다 검게 죽어가는 피부

지나온 생의 무늬는 목까지 차오른다

하루의 팔 할을 사색으로 보내는 그.

긴 항해 마치고 돌아온 목선처럼 지쳐 있지만

바깥으로 드리운 그늘까지 늙은 것은 아니다

주름 많은 몸이라 해서 왜 욕망이 없겠는가

봄이면 마대자루 같은 그의 몸에도 연초록

희망이 돋고 가을이면 붉게 물드는 그리움으로

깡마른 몸 더욱 마르는 것을,

늙은 나무가 피우는 저 둥글고 환한 꽃

찾아와 붐비는 나비와 벌들을 보라

검은 피부에도 가끔은 꽃물이 든다

젊은 나무가 젊은 꽃을 피우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고목이 피워 올리는 꽃은 훨씬 가치롭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진정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고목을 우리는 많이 보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