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br>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검찰에서 ‘누구누구의 사단이다’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애초 특정 라인·특정 사단 같은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특정 학맥이나 줄 잘 잡아야 출세한다는 것도 사라져야 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한 사람이 올해 들어 2차례나 검찰 학살 인사를 단행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라면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힘없는 아이를 뒷골목으로 끌고 가 실컷 두드려 패놓고 돌아서서 “폭력은 없어져야 한다”며 으스대는 일진 패악과 뭐가 다른가.

모름지기 이 나라 정치권은 이중인격자들의 천국이 됐다. 앞에서 하는 말 다르고 뒤에서 시키는 일 다른 게 ‘유능한 정치’라고 믿는 타락한 정치학이 판을 치고 있다. 여러 번 속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에서 멋있게 좋은 말만 하고 뒤로는 민주당이 ‘독주’ 가속 페달을 밟는다. 대통령은 ‘협치’를 말하며 야당을 다독이는 척하는 선한 역할(굿캅)을 하고 민주당은 뒤에서 176석 의석수로 밀어붙여 매사를 독단으로 처리하는 악역(배드캅)을 맡는다.

지난해 7월 문 대통령은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며 “검찰이 청와대든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에 엄정한 자세로 임해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한 검찰은 어떤 몰골이 돼 있나. 중요한 수사를 담당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동료들을 다 잘라내는 게 ‘검찰 개혁’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나.

이제 국민의 관심은 이런 만신창이 검찰이 그동안 세상을 놀라게 했다가 흐지부지돼가고 있는 권력형 비리 부정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쏠려있다. 청와대 울산 시장선거 개입 의혹은 어떻게 끌고 갈 건가. 윤미향과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은 또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6개월째 지지부진한 추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사건 수사는 어디로 가나. 옵티머스 펀드 사건은 핵심 수사가 시원하게 진행될 것인가.

윤 총장이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한 말의 파장이 길다. 그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제 발 저린’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설훈, 김두관, 이재정 의원 등이 윤 총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나섰다. 자기들은 한사코 ‘독재’와 ‘전체주의’ 아니라면서 왜들 그러나.

손발이 다 잘렸다고 하지만 검찰총장직의 권능은 살아 있다. 윤 총장은 권력형 범죄에 대해 원칙대로 수사해야 한다. 포위한 추 장관 패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듣지 않는 대로 그 행태를 역사에 명징하게 남겨야 한다. 온 국민이 진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진짜 검사 윤석열’을 기다리고 있다.

윤 총장은 지금 법대로 수사하는 게 “권력형 비리에 엄정한 자세로 임해달라”는 대통령의 당부를 지켜내게 되는 역설의 땅에 도달해 있다. 제대로 되느냐 마느냐는 다른 문제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의 정치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시퍼렇게 멍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