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사건이 여의도 정치판은 물론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사회운동가이자 여권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그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프랑스의 범죄학자이자 ‘자살론’을 저술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의 원인 및 유형을 4가지로 나눴다. 사회적 연대가 너무 약해졌을 때 일어나는 이기주의적 자살은 과도한 개인주의가 원인으로 꼽힌다. 사회적 연대가 너무 강화됐을 때 나타나는 자살, 예를 들어 자폭 테러, 순장, 카미카제 등은 이타적 자살이다. 아노미적 자살은 무규제(normlessness) 상태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살로 실직한 가장의 자살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적으로 규제가 너무 약할 경우의 자살이다. 사회적 규제가 너무 강할 경우의 자살은 숙명론적 자살로, 꿈도 희망도 없는 노예나 계층 이동 사다리가 완전히 막혀 극단적인 빈곤을 평생 대물림으로 강요당하는 극단적인 양극화에 속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다. 묘사하자면 “무슨 노력을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이게 숙명이야”라는 절망감이 자살에 이르게 한다.

뒤르켐의 분류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숙명론적 자살에 해당할 듯하다. 그가 자살한 이유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성추행 피소가 엄청난 충격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가 성추행으로 피소된 지 하루만에 자살한 채 발견된 것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전면 부정하는 모순에 맞닥뜨리면서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으리란 추측이다.

무엇보다 부산시장에 이어 서울시장이 성추문으로 하차하게 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비상이 걸렸다. 장례식장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질문하는 기자에게 예의가 아니라며 욕설까지 퍼부었던 이해찬 대표도 공식적인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야당은 이때가 기회라는 듯 특검과 국정조사를 거론하며 여당에 대해 맹공을 펼치고 있다.

무사도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할복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자신의 결백함이나 명예를 위해 배를 칼로 그어 자살하는 행위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이거나 전쟁에서 진 장수가 살아남았을 때에 모든 일의 책임을 지기 위해 이루어졌던 이 행위는 고결한 행위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근대 일본에선 표절 시비에 휘말렸던 문학 작가마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할복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 할복 자살 덕분에 일본 내에서 자살이란 행동은 꽤나 숭고한 행위로 여겨졌으며, 죄를 지은 인간이라 해도 자살을 했을 경우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러나 한국은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수 천 년 전부터 죽음에 대한 금기가 심하다. 유교의 정신 역시 죽음을 금기시한다.

박 전 시장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로 목숨을 끊었지만 어쨌든 피해 진상규명 절차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국민여론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쪽이 많다. 그래야 제도적 무관심 속에 방치된 이들에 대한 구제가 가능해질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