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br>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선량들의 본격 활동이 개시되었다.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독식했느니, 추경에 야당이 들러리를 섰느니 언론의 요깃거리들이 하루를 멀다않고 진수성찬으로 쏟아져 나온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 힘든 민초들로선 그 동네 돌아가는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여력이 없다. 감시꾼의 눈초리가 느슨한 틈을 타 정치판에 공룡과 괴물들이 난장판을 만들까 걱정이다. 공직을 끝낸 뒤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정치 한번 해보지?’라는 권유나 덕담을 간간히 듣게 된다. 자질과 상관없이 의미 있는 일을 해보라는 말이다. 손사래를 치다가도 ‘오늘 멋지다’고 건넨 아침 인사말에 심장이 벌렁거리며 거울 한 번 더 쳐다보는 심정이 된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다”고 일갈하며 떠난 노정객의 말이나 “정치하지마라”고 측근에게 유언을 남긴 전직 대통령의 뼈저린 말속엔 정치는 보통의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나름대로 세 가지 자가 진단을 해본다. 첫째, 나는 권력의지가 있는가?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은 가만히 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닌 쟁취의 산물이다.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의지 없이 선한 목자처럼 사람만 좋아서는 권력은 쟁취되지 않는다. 둘째, 나는 타인과 잘 싸울 자신이 있는가? 논리와 명분으로 싸우든 몸으로 싸우든, 첨예한 대척점에서 싸우지 않고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그 동네 현실이다. 탁자 위를 나르는 공중부양과 의사봉보다 주먹과 발길질을 더 잘 휘두르는 사람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고 정치적 자산을 쌓아 정치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그랬냐며 화해의 손짓을 동전 뒷면 보듯이 할 수 있는가? 철천지원수처럼 싸우다가도 국리민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과감하게 손을 내밀고 카메라 플래시 세례 앞에서 잇몸을 드러내며 씨익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두고 ‘나는 정치인 자질이 있는가?’ 진단한 결과는 경찰 고위직까지 했으니 권력의지는 좀 있는 것 같은데 싸우는 것과 싸운 뒤 쉽게 화해하는 것을 잘 못하겠다. 묘수인양 훈수나 두는 장기판 훈수꾼에 머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창시절 정치학개론 첫 수업시간에 ‘야누스’를 배웠다. 정치는 야누스라는 정치인 출신 교수님의 강의가 그 때는 절절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실을 목격하니 두 개의 얼굴인 야누스가 정치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땀 흘리는 선량들의 의지와 노력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언제나 감사하다. 군림하고 사리사욕을 위한 권력의지라면 노땡큐다. 어떤 논리와 명분을 내세워서라도 국민을 위한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면 언제나 감사하다. 당리당략이라는 내숭을 감추고 있다면 노땡큐다. 길길이 싸우다가도 활짝 웃는 모습이 대의를 위한 타협의 몸짓이라면 야누스의 얼굴이라도 언제나 감사하다. 속마음은 단지 작전상 후퇴일 뿐 참다운 웃음이 아니라면 이것 역시 노탱큐다.

한 번 더 진단해 봐도 나는 함량미달이다. 눈 뜬 민초로 살아가는 게 분수 같다. 정치DNA를 가진 분들의 활약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