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여행자에게 ‘국경’을 넘는다는 건…

비 내리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비 내리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 러시아 국경을 넘어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드디어 러시아로 들어왔다. 꽤나 더운 날씨였는데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들어와선 대차게 내리는 소나기를 피할 겨를도 없이 맞았다. 탈린에서 비 때문에 하루 더 쉰 보람이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볕에 뽀송뽀송하게 말렸던 부츠도 슈트도 다시 물에 젖어버렸다. 말짱 도루묵!

탈린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려면 나바르라는 작은 국경도시를 지나야 한다. 그냥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면 될 줄 알았는데 특이하게도 검문소에서 2.5킬로미터 떨어진 차량 대기소에 가서 통과요금(2.5유로)을 내고 영수증과 접수증을 받아 검문소로 가야한다. 대기소는 어마어마하게 큰 주차장인데 탈린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차량이 그만큼 많은 듯하다. 가능하면 기다리지 않고 최대한 빨리 통과하기 위해 아침 6시가 되기 전 탈린에서 출발했다. 탈린에서 나바르까지 가는 길은 포장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소련으로부터 1991년 독립하고 난 후 에스토니아는 러시아보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결국 2004년 유럽 연합에 가입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 후론 완전히 러시아와 관계는 소원해졌다.

 

에스토니아의 국경 도시 나바르.
에스토니아의 국경 도시 나바르.

유럽으로 향하는 길과 러시아로 향하는 길의 포장상태만 봐도 그 관계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 그건 에스토니아뿐만 아니라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도 마찬가지다. 8시 30분쯤 대기소에 도착해 수속을 밟고 러시아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는데 걸린 시간은 3시간 남짓이었다. 500미터 남짓 국경을 넘는데 3시간이나 걸리니(거의 대기줄이 없었음에도) 자주 넘어야 하는 이들은 얼마나 피곤할지.

국경검문소를 넘을 때마다 그곳 직원들의 반복된 질문이 바로 ‘영문차량등록증’이 진짜냐는 것. 외국으로 오토바이(차량도 마찬가지)를 가지고 나가기 위해선 차량등록사업소에 가서(면 단위는 면사무소) 영문차량등록증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직인만 찍혀있다 뿐이지 정식 공문서로 보기 어려운 수준이라 그들 입장에선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원래 차량등록증도 마찬가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토바이나 차를 가지고 떠난 분들이 흔히 겪는 경험이다. 육지로 이동할 수 없는 섬이나 마찬가지인 우리에게 영문차량등록증이 필요한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극소수를 위해 제대로 만든 공문서 양식을 만드는 건 행정력 낭비일 수도 있겠지만,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자유롭게 차량이 이동할 수 있는 시절은 아니지만 미리 이런 사소한 것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양식을 참고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통일이 되고 자유롭게 아시아와 유럽을 다닐 날이 오지 않겠나. 에스토니아 검문소에서도 러시아 검문소에서도 차량등록증의 진위 여부를 가리느라 한참 기다려야 했다. 통관 서류부터 보험 서류까지 모두 보여야 했고. 특히 ‘도큐먼트’를 중요시하는 러시아나 구 소련권 국가의 공무원들은 우리네 차량등록증의 수준(?)을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러시아로 넘어가려는 차량들. 에스토니아를 다녀가는 러시아 차량에 대해선 꼼꼼하게 실린 짐을 검사했다.
러시아로 넘어가려는 차량들. 에스토니아를 다녀가는 러시아 차량에 대해선 꼼꼼하게 실린 짐을 검사했다.

◇ 항상 의심 받는 영문차량등록증

국경통과에 시간이 한참이나 걸리고 소나기까지 맞았지만 러시아에 오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많은 나라를 여행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성향이랄까. 러시아를 달리며 날씨로 고생한 것을 제외하곤 꽤 편안하게 다녔다. 러시아가 좋았던 이유는 역시나 물가가 저렴한 탓이었고,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토바이 여행자에게 친절했던 사람들을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만난 탓이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은 것도 마음이 편안 이유 중 하나겠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선 배를 개조해 만든 숙소에 짐을 풀었는데 1박에 7천 원 정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중심가에 이런 가격으로 묵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일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들어오면서 고속도로를 이용했는데 페트로 그라츠키 섬(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여러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으로 들어오면서 거리에 비해 꽤 비싼 통행료를 냈다. 러시아에선 유료 도로를 이용한 적이 없었는데 에스토니아의 국경도시 나르바를 통과해 상트 페테르부르크까진 약 180킬로미터로 짧은 거리였지만 국경을 통과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써서 도심을 관통하는 길은 포기했다.

만약 도심을 통과하면 예상보다 늦게 숙소에 도착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유료 도로를 벗어나 숙소를 찾기 위해 도심으로 들어오자마자 길을 잘못 들어 고생했을 뿐 아니라 숙소를 찾지 못해 또 길을 헤매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네바강 지류에 떠있는 배가 숙소였던지라 배를 매어둔 선착장 입구를 찾지 못하고 그 주위를 계속 맴돌기만 했다. 오토바이를 세울만한 장소를 찾느라 또 이리저리 다니느라 녹초가 되어버렸다. 숙소 직원에게 길가에 주차된 오토바이 사진을 보여주며 괜찮은지 물었지만 문제가 생겨도 책임질 수 없다고 최대한 숙소 가까이 가져다 놓으란 이야기만 들었다. 하지만 더는 움직일 힘도 없어 그대로 방에 들어가 씻지도 않고 슈트를 입은 채로 누웠다.

 

네바 강 지류에 정박하고 있는 오래된 배가 숙소였다.
네바 강 지류에 정박하고 있는 오래된 배가 숙소였다.

◇ 표트르 대제의 야망이 만든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에 의해 1713년부터 러시아 제국의 수도로 지정되었다. 그로부터 1917년 3월 혁명과 10월 혁명을 거쳐 로마노프 왕조가 끝나고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고 1918년 모스크바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러시아 제국의 중심지였다.

표트르 대제는 유럽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네바 강의 하류, 핀란드 만과 접한 습지였던 이곳을 개발해 도시를 세우기 위해 엄청난 공력을 들였다. 습지를 메워 건물을 짓기 위해 기반을 닦을 엄청난 석재가 필요했는데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배에 일정 무게 이상의 돌을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표트르 대제가 모스크바를 두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수도로 삼기위해 노력했던 이유는 그가 어린 시절 이복누이 소피아 공주의 쿠데타로 크렘린 궁에서 쫓겨나 외국인 거주지에서 살았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공원에 모여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시민들.
공원에 모여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시민들.

그는 외국인 거주지에서 살던 청소년기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이주해온 기술자들과 교류하며 석공과 목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배우는데 열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변방으로 힘이 없었던 러시아를 어떻게든 유럽에 편입시키고 영토를 넓히고자 했던 표트르 대제의 꿈은 그 시절부터 키웠던 것이고, 말년에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옮기기 위해 거대한 토목공사에 집착했던 이유는 낡은 것을 버린 새로운 러시아의 상징을 자신이 죽기 전에 남기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럽 어느 도시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만들기 위해 그는 자신의 아들이자 왕위를 물려받을 황태자를 죽음으로 몰고 수많은 반대자를 처형했으며, 토목공사에 지친 민중들의 반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민중들의 고혈을 짜내 도시와 성을 만드는 토목공사는 결국 권력자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다.

침대에 누워 지도를 보며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과 그동안 저질렀던 실수들을 천천히 복기했다. 이제 출발해서 달려왔던 1만㎞를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오토바이를 받아 시동을 걸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80일, 3만㎞ 가까이 달렸다.

러시아나 유럽을 제대로 보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는 게 두고두고 안타깝다. ‘주마간산’은 나 같은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겠지. /조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