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활발한 봉사 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박언휘 원장.
활발한 봉사 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박언휘 원장.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면 친구가 두엇 보이지 않았다. 울릉도의 거센 파도에 배가 제때 뜨지 않아 패혈증이나 맹장염으로 죽은 친구들이었다. 파도가 치는 날이면 울릉도는 무엇이나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은 늘 이 파도에 저당 잡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살아남는 방법은 아프지 않는 것뿐이었다. 후에 대학을 결정할 때 박언휘(박언휘 종합내과 원장)는 주저 없이 의과대학을 선택했다. 어릴 때 죽어갔던 친구들과 이웃들을 보면서 박 원장이 생각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박 원장의 어머니는 법대에 가기를 원했지만 옳은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라도 이기면 유능한 변호사가 되는 것이 싫었다. 옳지 않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변호해야 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당시 박 원장이 다녔던 대구여고는 경북대병원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의사와 병원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머리가 좋았던 그녀에게 의사의 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얼굴없는 천사’ 대구 박언휘 종합내과 원장

의료오지 고향 친구들의 죽음보며 의사의 꿈
미국생활서 배운 ‘정직함’ 인생 모토로
13년동안 요양원 등에 백신 15억어치 기부
일요일에도 병원 문 열며 의료서비스 펼쳐
슈바이처 나눔봉사회 이사장·소록도 봉사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 등 다양한 활동
시 전문잡지 발행인·의사시인협회 창립 등
문학분야서도 또다른 치유의 길 찾아

박 원장이 어릴 적에 읽었던 위인전 중에 퀴리부인이라는 책이 있었다. 그걸 보면서 자신도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자연과학을 해서는 세상이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박 원장은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되어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하고 싶었다. 환경이 열악했던 울릉도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늘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그런 박 원장에게 봉사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첫 번째는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는 일이죠. 나는 내 직업이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아픈 환자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통증에서 구해주는 일보다 더 큰 봉사는 없다고 생각하죠. 전 병원을 일요일에도 열어둡니다. 일요일이라고 아픈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그 다음이 주변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입니다. 우리 병원의 간호사들은 거의 장기근속을 해요. 17년씩이나 근무한 사람도 있어요.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지죠. 세 번째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청소년들을 돌보는 것이에요. 나도 어릴 땐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청소년들에게 멘토 역할을 해주고 싶어요.”

박 원장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직이다. 미국에서 10년 동안 생활하면서 배운 것이다. 그런데 의사가 정직을 강조하니 이상해 보였다. 이미 그 직업만으로 충분히 그들은 정직한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요. 같은 병에 쓰는 약이 많게는 수십 종이나 되는데 나는 가장 효과가 좋은 약을 쓰려고 하죠. 같은 병에 쓰는 약은 성분이 모두 같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다르죠. 환자들에게 좋은 약을 쓰고, 꼭 해야만 하는 치료를 하는 것이 의사의 정직입니다. 의사가 정직하지 않으면 환자는 좋은 약을 두고도 쓰지 못하죠. 다른 직업의 정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나는 주사 약이나 일반 약이나 가장 좋은 것을 쓰려고 합니다. 그게 내가 미국에서 배운 정직입니다.”

박 원장의 말을 듣고 나니 새삼 의사라는 직업이 새롭게 보였다. 사람의 아픈 몸을 치료하는 의사가 세상에서 가장 정직해야 할 직업 같았다.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는 제 직업이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아픈 환자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통증에서 구해주는 일보다 더 큰 봉사는 없다고 생각하죠”

 

그녀는 지난 13년 동안 무려 15억 원어치의 백신을 요양원이나 독거노인에게 제공해 왔다. 노인들은 폐렴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폐렴백신이나 독감백신은 꼭 맞아야 하는 백신 중 하나다. 그녀는 그 일로 2018년 대구시민대상을 수상했다. 그 봉사를 어쩌다 한 해 쉬게 되었는데 그해 노인들의 사망률이 더 높아지는 걸 보면서 그녀는 다시 봉사를 시작했다. 백신은 종류가 많지만 박 원장은 평생에 한 번만 맞으면 되는 폐렴백신을 제공하고 독감백신도 최고로 좋은 것을 제공했다. 정직한 의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정직함도 중요하지만 봉사 정신도 중요하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봉사란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이루어진다. 의사는 늘 타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렇게 의사 생활을 하면서 박 원장은 점자 약봉지를 개발해 특허 신청을 해놓았다. 시각장애인들이 약을 바꿔먹는 경우가 많이 생기고 부작용이 심각해지면서 시각장애인 환자, 컴퓨터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고 점자 약봉지 개발에 성공했다. 이제 정부 지원을 받아 각 지역마다 공급되면 시각장애인들이 약을 잘못 먹어 죽음에까지 이르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본다. 

박 원장은 ‘돈 나오는 곳은 피눈물 나는 곳’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몇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은 말은 돈을 많이 벌어야 봉사도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버는 만큼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다. 

지금도 물만 보면 바다를 생각하고 고향을 떠올린다는 박 원장에게 울릉도는 꿈이 있던 섬이면서 눈물 나는 섬이었다. 어떤 때는 울릉도 해안까지 온 배가 파도 때문에 접안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고, 열두 시간이나 배를 타고 가다가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울릉도는 아이를 낳으려면 육지로 나와야 하는 서글픈 섬이기도 했다. 그 섬은 박 원장에게 마음의 정처였지만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배가 뜨지 못하면 내일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박 원장은 섬에 잘 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몸에 스민 섬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내과 의사인 그녀는 의학 이외에도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시 전문 잡지 ‘시인시대’ 발행인으로 있는 그녀는 문학이 치료의 또 다른 방법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6개월 정도 우울증이 왔었어요. 그때 글을 썼죠. 그런데 희한하게도 문학이 치유가 되더라고요. 의사의 존재 이유는 환자의 치료입니다. 그런데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문학으로 치유하는 것도 치료죠. 나는 치유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의대에서 10년 정도 강의도 했어요. 한의학이나 문학이나 양방이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 방법을 찾으려고 해요.”

문학의 치유를 경험하면서 박 원장은 전국의사시인협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시인시대’를 발행함으로써 시인들에게 발표의 장도 마련해 주고 싶었다. 

박 원장은 의학의 기본은 예술이라고 했다. 예술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데 고통에서의 해방은 보이지 않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의사의 긍정적인 말과 사랑이 예술의 힘이라고 본다는 것.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는지 그대로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박 원장이 마음의 고향 울릉도를 통해 배운 것은 거센 파도를 타는 법이다. 파도를 이기려면 파도를 절대 거스르지 않고 순응해야 한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파도와 싸우며 파도 타는 법을 익힌 박 원장은 파도에서 얻은 지혜로 어떤 일이라도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 힘은 정직과 실력, 사랑, 기도의 힘이다. 박 원장의 입에서 자주 흘러나오던 정직과 봉사, 사랑이라는 말이 헤어지고 나서도 오래 머리에 남았다. 박 원장은 현재 ‘슈바이처 나눔 봉사회’ 이사장을 맡아 의료봉사를 펼치는 한편 대구 봉사단체 참길회에서 소록도 봉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소사이어티 54호 회원으로 가입했다. 가입 후 자신이 미처 몰랐던 분야의 봉사를 새롭게 할 수 있어 즐겁다고 했다. 대구의 ‘얼굴 없는 천사’라는 그녀의 별칭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울릉도의 소녀가 대구에서 봉사의 마당을 펼친 것이다.  /대담정리 천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