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객주’의 작가 김주영

김주영 문학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청송의 객주문학관.
김주영 문학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청송의 객주문학관.

김주영은 1939년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서 태어났으며 진보초등학교와 진보중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에서 대구농림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공부한 후에는, 오랜 시간 안동에 있는 엽연초생산조합에서 일하였다. 1976년 상경할 때까지 안동 지역의 문인들과 어울리며 ‘안동문학’이라는 동인지를 창간하기도 하였다. 김주영이 창작한 방대한 문학세계는 도시 빈민들을 다룬 소설, 대하역사소설, 유년기 체험을 다룬 소설로 나눠볼 수 있으며, 이러한 문학세계는 “소외된 국외인들인 배고픈 유년, 도시빈민 악동, 과부, 유랑인을 묘사”(양진오)하거나 “의리 이데올로기를 내세움으로써 동양적 전통의 웅자(雄姿)한 남성문학의 전통”(하응백)에 이어진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김주영의 ‘객주’는 작가의 문학적 특징이 압축된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객주’는
민중 중심의 역사관을 구체적
생활상 속에 생동하는 이념으로
육화시킨 대표적인 사실주의적
역사소설로 꼽힌다.
이전의 역사소설이 왕실이나 영웅
중심이었다면,
‘객주’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질서에서 맨 아래를 차지하는
상인, 그 중에서도
최하층에 해당하는 보부상을
전면에 내세웠다.

‘객주’는 1979년 6월 2일부터 1983년 2월 29일까지 총 1천465회에 걸쳐 연재된 대하 역사소설이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창작과비평사에서 3부(1부 외장(外場), 2부 경상(京商), 3부 상도(商盜)) 아홉 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가 1992년 같은 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2003년에는 문이당으로 출판사를 옮겨 개정판이 나왔고, 2013년에 문학동네에서 10권이 출간됨으로써 삼십여 년 만에 완간에 이르렀다.

‘객주’는 민중 중심의 역사관을 구체적 생활상 속에 생동하는 이념으로 육화시킨 대표적인 사실주의적 역사소설로 꼽힌다. 이전의 역사소설이 왕실이나 영웅 중심이었다면, ‘객주’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질서에서 맨 아래를 차지하는 상인 그 중에서도 최하층에 해당하는 보부상을 전면에 내세웠다. 보부상은 봇짐장수로 앉아서 파는 보상(褓商)과 등짐장수로 서서 파는 부상(負商)을 함께 아우르는 말로, 떠돌이 행상을 말한다. 보부상은 상인 중에서도 특히 궁핍하고 불우한 처지에 속했던 자들로서, 대체로 가족이 없는 홀아비나 고아 또는 가난하여 결혼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임경희, ‘경상동에서 조선의 보부상을 만나다’, 민속원, 2014, 20면) 김주영은 보부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각 지역의 토속적인 산물과 풍속, 구전설화와 야담, 음담, 민요, 판소리, 타령, 탈춤, 무가 등을 전면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민중의 삶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작품을 창조하는데 성공하였다.

떠돌아다니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보부상이 주인공인 소설답게 작품의 무대로 여러 곳이 등장한다. 삼남(三南)지방을 배경으로 한 1부에서는 문경, 상주, 안동, 예천, 하동, 구례, 전주, 강경, 연산, 군산포 등이 나온다. 2부에서는 주요한 무대가 서울로 바뀌고, 사적인 갈등을 다루었던 1부와는 달리 세도가인 김보현이나 거상 신석주 등을 통해 구한말 조선의 본질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차원으로 확대된다. 2부에서는 무교, 애오개, 약고개, 압구정, 두뭇개, 수철리, 시구문 등의 서울 지리가 매우 상세하게 묘사된다. 3부에서는 서울이나 평강과 더불어 원산이 주요무대로 새롭게 등장한다. 이 때의 원산은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1876년 일본과 체결한 강화도 조약으로 인해 1880년에 개항한 3대 항구(부산, 원산, 인천)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원산을 배경으로 한 3부에서는 자연스럽게 일본의 침략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게 된다.

‘객주’를 지도 삼아서 답사를 떠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작품의 배경이 된 공간들에 대한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다. 이것은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답사 등을 하며 기울인 노력이 만만치 않음을 증명한다. 또한 등장인물의 형상화도 매우 실감나는데, 이것은 작가의 유년기 체험과도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김주영이 나고 자란 진보라는 곳은 본래 장시(場市)가 성한 교통 요지였으며, 생계를 책임 진 어머니는 저잣거리 마을에서 품을 팔아 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김주영은 ‘객주’를 쓰게 된 첫 번째 동기로, 어린 시절 집 밖의 유일한 큰 세계를 이루었던 저잣거리 사람들의 삶을 그려야 한다는 작가적 부채 의식을 꼽을 정도이다. 요컨대 김주영에게 장터와 그 곳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은 너무나 익숙한 삶의 원풍경이었던 것이다.

‘객주’는 민중과 권력층의 대립이라는 기본 갈등에 바탕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병렬적으로 연결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민중과 권력층의 대결은 일방적으로 후자가 힘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민중들 역시 만만찮은 힘을 발휘한다. 이것은 보부상들의 공동체 의식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그들의 지략과 완력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객주’에는 음모와 협잡이 가득하여 배신은 물론이고, ‘배신의 배신’, 나아가 ‘배신의 배신의 배신’까지 일어난다. 여기에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보부상들의 공동체이다. 그들은 “동병상련으로 객고(客苦)를 달램에 유무상통하여 혈육지간보다 질긴 정분을 가지고 간담상조(肝膽相照)하고 환난상구(患難相求)하는” 윤리를 철저히 지켜나가며, 그것을 위반했을 시에는 엄격하게 응징한다. 본래 김주영은 고아, 넝마주이, 창녀, 고물장수, 백정 등의 주변 인물들을 주요한 문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왔으며, ‘객주’의 보부상들은 작가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민중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객주’는 후반부로 갈수록 임오군란과 같은 역사적 사건의 비중이 커지는 경향을 보이며 동시에 주요한 갈등이 민중과 지배층의 대결에서 조선과 일본의 대결로 변모한다. 이 작품이 배경으로 삼은 1878년에서 1884년까지의 시기는 우리 민족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때이다. 작품의 전반부가 조선의 봉건적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에 집중했다면, 후반부에서 비판의 대상은 당시 가장 위협적인 외세였던 일본으로 옮겨간다. 이 작품의 인물 대다수는 반일의식을 공유한다. 주인공인 천봉삼은 이러한 반일의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인물이다. ‘객주’의 모든 갈등은 결국 외세/민족이라는 이분법으로 수렴된다. 그것은 왜선을 공격하여 감옥에 가게 된 천봉삼을 빼내는 일에 조선의 모든 역량이 총집결되는 모습을 통하여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용익, 매월이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명성황후와 고종까지 천봉삼의 탈옥에 동조하는 것이다.

 

2013년에 새롭게 덧붙여진 10권은 탈옥 이후 천봉삼의 삶을 다루고 있다. 1884년 갑신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 10권에서 천봉삼은 울진 포구에서 현동 저자나 내성으로 가는 십이령길에 나타난다. 본래 울진과 봉화를 잇는 십이령길은 보부상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보부상들은 소금과 해산물이 풍부한 울진의 흥부장, 울진장, 죽변장에서 미역, 고등어, 건어물 등을 구매해 동서 방향 주 도로인 십이령길을 걸어 봉화로 향했으며, 봉화에선 비단, 담배, 곡식을 싣고 되돌아왔다고 한다. (송기역, ‘힐리로드-옛길에서 사람, 그리고 보부상을 만나다’, 이야기의숲, 2015, 231면)

십이령길에 나타난 천봉삼은 조선을 대표하는 상인이자 일본에 맞서는 지도자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남행하였다가 산적 무리에게 잡혀 그들의 염탐꾼 노릇을 하는 범부이다. 10권에서는 일본이 아니라 천봉삼과 십이령길의 상단을 괴롭히는 산적 무리를 징치하고 장시의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야말로 핵심적인 과제가 된다. 소금 상단의 도움으로 구출된 천봉삼은 결말에 이르러 드디어 안정된 가족을 이루고 생달 마을에 정착해 촌장이 된다.

천봉삼과 그를 따르는 이들은 생달 마을에 이상적인 마을을 건설한다. 이곳에서는 대낮에도 노루가 뛰어들고 솥에는 꿩이 저절로 날아들며, 오랫동안 버려졌던 묵정밭이 불과 2년여 만에 “꿀이 흐르는 문전옥답”으로 변한다. 이 곳은 바로 천봉삼이 그토록 찾아 헤맨 “길지(吉地)”이며, 다음과 같이 이상적인 장소로 이야기된다.

“징세나 부역이 없고, 토호들의 발호나 관리들의 가렴주구가 없고, 양반도 없고 상것도 없는 세상 아니겠습니까.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지 않아도 열매가 열리는 그런 땅이겠지요. 마당에 노루가 뛰어들고, 솥에는 꿩이 저절로 날아드는 그런 땅이겠지요.”

천봉삼이 정착한 생달마을은 지난 날 조선의 방방곡곡을 걷고 걷고 또 걷다가 사라진 이름 없는 보부상들이 꿈에도 그리던 이상향이자, 30여년 만에 작가 김주영이 천봉삼을 비롯한 보부상들에게 바치는 선물에 해당한다.

외딴 마을에 사는 서민들의 물류를 책임치며 고단한 삶을 살다 간 보부상에 대한 선물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옛길박물관’과 ‘객주문학관’은 보부상을 기리는 현실의 장소들이다. ‘객주’는 경기도 송파지역의 쇠살쭈인 조성준이 자신의 전처와 간부(姦夫) 송만치가 살고 있는 문경에 가서 복수극을 펼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 복수극의 무대가 된 문경에는 지금 옛길과 보부상에 관한 유물과 유품이 전시된 옛길박물관이 있다. 또한 김주영의 고향인 청송군 진보면에는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객주문학관이 존재한다. 옛길박물관이나 객주문학관, 혹은 십이령길을 조용히 걷다보면 동료 보부상을 위해서 목숨도 흔쾌히 내놓던 천봉삼의 우렁찬 웃음소리가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문학평론가 이경재

 

작가 김주영은…

1970년 ‘월간문학’ 가작 입선, 이듬해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주영은 경북 청송 출신이다. 토속적인 농촌 배경의 설정, 향토색 짙은 문장과 현장감이 살아있는 비어와 속어의 능수능란한 구사 등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여자를 찾습니다’ ‘아들의 겨울’ ‘천둥소리’ ‘홍어’ ‘빈집’ ‘객주’ 등의 작품을 썼고,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