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br>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보훈의 달이다. 호국영령들에 대해 머리를 숙인다. 그들의 넋을 기리며 애국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의무감은 산자들의 몫이다. 애국하면 떠오르는 상징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목청껏 부른다. 끓는 심장을 싸고 있는 유니폼 상의 태극마크를 감싸 쥔다. 대형 태극기가 물결처럼 출렁이고 관중석 함성은 하늘을 찌른다. 국가 간 축구대항전 식전의식이다. 군악대 팡파레가 울려 퍼진다. 양국 국기를 곧추 세운 의장기수단 옆을 지나간다. 태극기를 향해 방문 귀빈이 왼쪽가슴에 손을 올려 경의를 표한다. 순국한 국군장병의 관(棺)을 붙들고 오열하는 유족을 바라보는 동료장병들의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그의 남은 체온을 조금이라도 더 지키려는듯 관을 감싼 태극기의 작은 몸부림이 함께 한다. 캐네디 공항 상공을 휘감아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가 활주로를 따라 움직인다. 환영인파를 향하여 기체를 돌리는 대통령 전용기 태극마크가 이국땅에서 점점 더 크게 보인다. 반도강점 원흉들을 향하여 도시락 수류탄을 투척한다. 가슴 속에 숨겨둔 태극기를 꺼내 펼쳐든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대한민국의 상징, 태극기 활약상이다. 나라의 상징인 국기의 의미는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아도 모두들 잘 알고 있다. 학창시절 태극기 그리기 숙제는 지루하고 힘든 일이었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애국심이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다른 숙제는 빠뜨리더라도 놓치지 않고 했던 것 같다. 주입식 애국교육 탓인지 아직도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노라면 가슴 한 곳이 찡해진다. ‘국뽕’(애국심 발현을 마약에 취한 것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다) 꼰대라고 빈정거림을 당해도 어쩔 수 없는 세대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태극기 교육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건국시기를 두고 이념의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상징물에 대한 재해석 의견들이 분분하다. 광화문 광장을 매주 메꾸며 집회를 하시는 분들의 단체명에 태극기가 들어갔다. 특정 부류로부터 태극기가 마치 혐오도구로 기피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든다. 일부 극단적인 부류에서는 태극기를 분단의 상징물로 여기는 것 같다. 그 자리를 한반도 지도가 새겨진 ‘한반도기’가 통일 대한민국 국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155마일 휴전선을 두고 남북의 총구는 서로를 겨누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지키는 국군장병의 팔뚝엔 태극기 휘장이 그의 조국수호 의지를 받쳐주고 있다. 이념의 갈래 속에 태극기가 애증의 대상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코로나로 광화문 집회에 등장했던 태극기가 장롱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장롱 속 태극기가 나올지 모른다. 장롱 속에서 그의 마음이 안녕했을지 모르겠다. 현충일은 조기 게양 날이다. 마치 일제강점과 분단 조국의 슬픔에 겨워 깃대 맨 끝까지 못 올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산자들이 더이상 태극기의 안녕을 흩트리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 초대형 태극기가 하늘을 찌를듯 국기봉에 매달려 힘차게 휘날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