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전통가요 원곡 기록
50곡 사연 모은 에세이도 발간
“환호받는 후배들 자랑스러워”

가수 주현미가 서울 강남구의 한 연습실에서 열린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안 내 일상이 뭐였는지 알아요? 잠자기 전에 (유튜브에 달린) 댓글 보는 거였어요. ‘이런 작업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하는 반응에 너무 행복해하면서, 졸면서도 그거 보면서 잠드는 게 내 일이었어요.”

‘트로트의 여왕’ 주현미(59)는 누워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해 보이며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 사람’, ‘짝사랑’, ‘잠깐만’, ‘또 만났네요’ 등 무수한 히트곡과 함께 35년간 대중 곁을 지켜온 그가 유튜브를 연 지 1년 반.

유튜브 ‘주현미 TV’에 들어가 보면 일단 그 규모와 짜임새에 놀라게 된다. 단순히 노래를 전하는 창구가 아니라 한국 전통가요를 모은 아카이브에 가깝다. 멀리는 1920년대까지 100년간 가요사의 대표적 전통가요를 불러 영상으로 남기고 연대별로 모았다.

유튜브로 기록해온 노래 이야기 50선을 추려 최근 책으로도 엮었다. 그의 히트곡 ‘추억으로 가는 당신’과 같은 제목의 에세이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최근 만난 주현미는 “유튜브 노래(영상)마다 들어있는 이야기가 책이 되어서 나오니 더 ‘역사’가 될 것 같은 느낌”이라며 “책임감이 생기더라”고 했다. 음반으론 정규 앨범만 17장을 낸 그는 책을 낸 느낌이 “정말 다르더라. 참신선했다”며 웃었다.

◇“잊히는 노래 사연들 안타까워…내 유튜브로 공부했단 후배들에 뿌듯”

“그런 거 있었어요. 이건 재미로 한 게 아니에요, 절대.” 옛 노래를 기록하는 유튜브를 시작한 데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느냐는 질문에 주현미는 목소리를 낮추며 답했다.

“노래만 남고 이야기들은 잊히고 묻히는 게 안타까웠다”던 그는 2018년부터 ‘주현미 밴드’ 음악감독인 이반석 밴드마스터와 함께 유튜브 작업을 시작했다. 함께 자리한 이반석 마스터가 “(주현미가 작업을 제안한) 인천 콘서트 대기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거들었다.

아쉬움을 느낀 계기는 사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주현미는 “우리 밴드가 세션 파트마다 그 분야 최고인데, 트로트만 하면 ‘느낌’이 안 나더라. 청승맞고 애간장을 녹이는 그 느낌이 있는데…”라며 “최고로 음악을 한다는 팀도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우리 선배님들이 남겨 놓은 노래들을 잊어버리겠다 싶었다”고 했다.

전통가요 특유의 정서를 이해하려면 그 뒤에 서린 시대적 아픔 등 배경과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6·25 전쟁 당시 입대한 오빠 대신 나룻배를 저었던 소녀의 사연(‘처녀 뱃사공’)이나 부산 피란 생활을 마치고 몸을 실은 환도 열차의 슬픔(‘이별의 부산 정거장’), 이촌향도의 애환(‘앵두나무 처녀’) 등을 들려주는 이유다.

곡에 얽힌 자료를 찾고 가사와 멜로디를 복원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자료 조사를 해온 이반석 밴드마스터는 “초창기 가요들은 원본을 찾을 길이 없어지기도 했다”며 “일본에 계신 팬클럽 분이 ‘(LP 이전의 레코드인) SP판’으로 가진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화려한 악기 편성 대신 기타와 아코디언 등 단출한 반주만으로 노래하는 것도 원곡 그대로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주현미는 “훗날 후배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를 위해 원곡에 가깝게불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유튜브로 옛날 노래를 공부했다는 후배 가수들도 잇따른다.

“후배들이 와서 ‘이 곡 선배님 유튜브 찾아보고 배웠다’고 할 때 ‘바로 이거야’싶어요. 그럴 때 정말 너무 뿌듯해요… 또 외국에 계신 분들, 고향이 그리운 분들이‘어머니가 흥얼거린 옛 노래’라고 하시는 사연을 보면 가슴이 찡하죠.”

◇“트로트 매력은 심플함…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주현미 TV’에는 중학생 팬들도 있다. 주현미는 어린 팬들 얘기를 하다 “이 노래를, 이 정서를 안다고, 아가들아?”하고 웃으며 “트로트라는 이 장르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실제로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열풍을 탄 트로트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음악 장르다. 중장년뿐만 아니라 젊은 층도 환호한다.

주현미는 “트로트의 매력은 ‘심플함’ 아닐까. 단순하니 모든 감정을 대입하고 더 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인의 ‘공통분모’가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주현미가 걸어온 35년간은 트로트가 주류 장르에서 밀려나 소외됐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동안 소외되고 위축됐던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활동하고 있던 후배들이 이렇게 많았었나 싶었어요. 다시 트로트 무대에서 환호받는 후배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아, 이제 좀 한을 풀어라’ 그런 생각이 들죠.”

마지막으로 35년간 노래 인생을 되돌아보는 소회를 물었다. 그는 “글쎄, 아직 그 얘기 하려면 멀었을 거 같은데…”라며 역시나 소박한 대답을 했다.

“이미자 선배님이 60주년이셨고, 하춘화 선배님도 노래하시는데 이제 35년 된 걸 가지고 이야기하기가 뭐하네요. 너무 대선배님들의 발자취가 있으니까. 어쨌거나 팬들이 있어서 이렇게 계속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현미라는 가수를 아껴준 팬들도 계시고, 우리 전통가요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아직 많이 있어서 아직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거겠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