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효 근

집 밖에서 집을 보네

밤이 새벽으로 건너가는 시간

금성이 춥게 빛날 때

울다 잠든 아내 두고

집 밖에서 퀭한 눈으로 내 사는 아파트를 바라보네

저 칸칸이 토굴 같은 시커먼 아파트 덩어리

모래와 시멘트로 뭉쳐진 커다란 산

저 속에서

그만 살 것처럼 사랑하고

또 다 산 것처럼 싸우고

옷 벗고 뒹굴고 또 옷 입고 종주먹을 들이대고

나날을 최후처럼 살았네

불현듯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가운데

돈황의 막고굴이 떠올랐다네

커다란 산에 층층이 둥굴을 뚫고 수도승들은

화엄세계를 새겨 넣으려

굴 밖에 거울을 세워두고 빛을 반사시켜 들여서

몇십 년 몇백 년 작업을 했다지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

그들에게 차라리

내가 버리고 싶은 이 사바가 극락쯤은 아니 될까

그래, 나의 이 고해가 극락이라니

목말라 물을 찾다

밤새 술만 들이켰던 그곳이 우물터였다니

수많은 생불들이 불을 켜는 새벽

나 옷깃 여미고 저 사원으로 돌아가겠네

아등바등 힘겹게 살아가며 갖가지 고뇌와 번민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세속적 현실을 사원, 극락이라고 말하는 시인을 읽는다. 피하고 벗어나고 싶은 세속의 일들을 폭로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그것들을 끌어안고 그 속에서 공존하고 함께하려는 현실 수용의 마음이 피력되어 있음을 본다. 그것은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구도의 길을 가야겠다는 시인의 다짐을 읽을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