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각에서 내려다 본 주왕암 풍경. 주왕암은 청송군 주왕산면 공원길 356의 56에 위치해 있다.

거대한 바위와 가파른 절벽, 기암 단애라 불리는 바위 7개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서 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불리는 주왕산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다. 불과 물, 시간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합작품으로 경관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가치도 높다.

신비스런 계곡을 따라 걷는 탐방로는 완만하고 볼거리가 많아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대전사에서 10여분 쯤 걷다 갈림길에서 우측 자하교를 지나면 운치 있는 돌계단이 나타나고 호젓한 오솔길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길은 아쉬울 만큼 짧게 끝이 나고, 바위협곡이 시작되는 지점에 주왕암이 보인다.

대한불교 조계종 대전사의 부속암자 주왕암은 919년(태조 2년)에 눌옹이 대전사와 함께 창건했다는 설과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설이 있다. 이곳에 은거하였던 주왕을 기리기 위하여 주왕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창건 이후 역사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기왓장으로 쌓아올린 담장 위 작은 돌멩이들이 운치를 더하는 오솔길은 가학루 앞에서 멈추고 만다. 끌리듯 가학루를 들어서면 우람한 바위 절벽 아래 아늑하게 절이 앉아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띤 건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석불좌상이다. 미소가 넉넉해 보이는 석불 앞에서 두 손을 모으지만, 목에 걸린 금빛 목걸이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 어울리지 않은 세속적인 장신구로 인해 석불의 신성함은 사라지고 호객하듯 격이 떨어져 보인다.

착잡한 마음으로 높은 축대 위에 자리 잡은 나한전으로 오른다. 계단 주변을 금낭화가 허리 굽혀 불자들를 맞는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꽃말처럼 다소곳하며 지고지순한 자태에 암자는 환하다. 금낭화가 없었더라면 비탈진 계곡에 위치한 암자는 훨씬 음습하고 쓸쓸해 보였으리라. 금낭화로 인해 가파른 돌계단은 수미산을 오르듯 경건해진다.

요사채에서 나오던 비구니 스님이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먼저 인사를 건네신다. 외진 암자를 지키는 바위 같은 분이시리라. 스님은 나한전을 들러 이내 주왕굴로 총총히 사라지고 그 뒷모습을 금낭화가 배웅을 한다. 짧지만 따뜻한 일련의 풍경들이 내 마음까지 밝힌다.

적막한 산속에 비구니 스님과 금낭화의 아름다운 동거를 상상한다. 이른 새벽 법당에 불이 켜지면 금낭화도 눈을 뜨고 주왕암의 하루가 시작되리라. 날마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깨달음을 얻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혼자서 가는 길이 멀고 힘들 때, 한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보듬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바위산에 앉아 있는 전각들처럼 진부한 삶을 택하지 않은 스님의 길 또한 고단했으리라. 쓸쓸한 바람벽에 피어나는, 귀밑 하얀 금낭화의 오염되지 않은 모습에서 스님은 서방의 정토를 보았을지 모르고, 금낭화는 아침저녁 스님의 예불 소리 들으며 순결한 꽃빛을 피워냈을지 모른다.

인생은 수많은 관계와 관계의 연속이다. 관계 속에서 상처를 안게 되면 영혼은 고독해지기 마련이며, 그 상처 난 마음을 제대로 치유해주는 것도 역시 관계이다. 높다랗게 앉아 있는 산신각과 칠성각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내 주변을 돌아본다.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요즘은 자연을 가장 든든한 벗으로 삼고 있다. 아무리 캄캄해도 자연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진분홍 복주머니 모양의 꽃을 단 금낭화가 허리 굽혀 사랑을 전하는데 느닷없이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무벤치에 앉아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다. 불자가 아닌데도 자식들을 위해 난생처음 불전을 놓고 절을 했노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책무처럼 한평생 쏟아 붓고도, 어쩌면 제대로 쏟아 붓지 못해서 늘 미진하기만 한 그의 부정(父情)이 애틋하다.

문도 없이 오두막처럼 짜여진 산신각과 한 사람만 받아줄 만큼 협소한 칠성각은 욕심이 없는데 인간의 마음은 끝이 없다. 내려오는 길에 나한전에 들러 백팔 배를 시작한다. 조선 후기 작품인 석가여래 삼존불과 영험하다는 나한들, 색감 고운 영산회상도까지 작은 법당에는 그윽한 시선들로 가득하다. 나 스스로 짊어지고 가는 관계에서 좀더 자유로워지길 기도한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법당을 나설 때 절은 한결 편안하고 따뜻하게 보인다. 주왕굴에 가기 위해 협곡 사이로 난 철제 계단을 오르는데 스님의 독경소리가 낭랑하게 마중을 나온다.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주왕이라 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패하자 주왕산으로 숨어 들어온 뒤, 주왕굴에 은거하다 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 발각되어 신라의 마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조금 전 인사를 나누었던 비구니 스님의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뒷모습이 보인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수를 닮은 스님 뒤에서 여성 불자 한 분이 쉬지 않고 절을 한다. 당신을 따르겠다는 금낭화가 다시 보이고, 더러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연민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 나도 절을 시작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스님은 꽤 긴 시간 예불을 드리고 폭포수는 하염없이 떨어진다. 협곡을 빠져나오는 등 뒤로 스님의 독경소리가 점점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