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br /><br />시조시인<br /><br />
김병래
시조시인

신(神)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예수의 가르침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왕과 제사장은 물론 로마 총독까지 엄존하는 당시의 유대 땅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심지어는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 같은 경건주의자들보다도 세리나 창녀 같은 하층민들이 오히려 구원받기 쉽다는 말까지 했으니 어찌 무사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한 생명으로서의 가치가 평등하다는 것이지 세상의 부나 권력의 평등을 말하는 건 물론 아니었다.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 간에도 서열이 있다. 무리의 질서를 유지하고 우수한 형질을 유전하는 등의 종족보존본능에 따른 것이다. 인류도 처음에는 거기서 출발했으나 문명의 축적에 따라 우두머리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온갖 수단이 동원되어 종교나 정치의 지도자를 신격화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그 권세를 옹위하고 떠받치는 무리들이 있게 마련이고, 일반 백성들은 권력자를 추앙하고 숭배하는 것으로 심신의 안위를 보장받으려 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 ‘절대존엄’이라고 통치자를 우상화하는 집단도 있지만 대다수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표방해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다. 선출된 지도자들은 국민의 계속적인 지지와 호응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할 것이고, 개중에는 포퓰리즘이나 프로파간다 같은 극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히틀러나 스탈린은 물론 대다수 독재자들이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로 정권을 장악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듯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라를 패망으로 몰고 가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어떤 대상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을 팬덤(Fandom)이라 한다. 유명 운동선수나 인기 연예인이 주로 팬덤의 대상이 되는데, 팬덤을 형성하는 심리적인 이유나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팬덤이 기세를 떨치고 있다. 나라가 좌우로 나뉘어 반목하고 대립하는 가운데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치성향의 인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가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온갖 비리와 부정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거나 고발을 당한 자들을 지지하는 무리들이 자행하는 맹목과 광기에 가까운 행태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름께나 있는 인사들까지 앞장서서 불법과 비리와 파렴치를 옹호하고 나서면 같은 편의 패거리들이 벌떼 같이 달려들어 반대편이나 사법체계를 조롱하고 위협하는 무법천지를 연출하고 있다.

조국일가의 비리나 울산시장 부정선거 혐의자들, 최근에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의 비리의혹 등은 일말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할 일이지 무조건 편들고 두둔할 일이 아니라는 걸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팬덤의 무리들에겐 법치도 상식도 윤리의식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리 편이냐 아니냐가 유일한 판단 기준일 뿐이다. 더구나 저들이 지지하는 인물과 세력이 정권과 함께 사법부와 입법부, 언론과 교육과 문화계까지 장악을 하게 되었으니, 나라의 장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