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위계(位階)

아이신트 레고作 ‘루이 14세’. /루브르박물관 소장

그림은 그려진 주제에 따라 역사화,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로 나눠진다. 이러한 분류는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1648년 프랑스에서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명에 따라 왕립미술원이 설립됐다. 미술가들을 길러내기 위해 관(官)이 주도해 체계적으로 설립한 최초의 미술교육기관이다. 그런데 왕립미술원은 교육기관의 역할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문화 예술정책에도 깊이 관여를 했다. 그렇다면 루이 14세는 왜 왕립미술원을 설립했을까?

절대왕정의 루이 14세는 국가의 모든 영역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싶어 했다. 모든 권력은 자신으로부터 나오며 정치나 경제뿐만 아니라 학문과 문화, 심지어 예술 또한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한마디로 루이 14세는 ‘인간으로 태어나 신이 되고자’했던 인물이며, 정치적 목적과 함께 그의 욕망이 응축된 곳이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다. 베르사유를 장식하는 화려한 미술작품들은 오직 한 사람, 루이 14세를 찬양하는 수단이었다.

루이 14세는 스스로를 ‘태양왕’이라 칭하며 태양의 신 아폴론을 자기와 동일시했고, 미술가들은 왕의 욕망을 신화 속 인물에 투영한 그림으로 웅장한 궁전을 장식했다. 루이 14세가 지향했던 미술은 위대한 인물들의 위대한 이야기이다. 왕에게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며 귀감이 될 만한 교훈적인 내용을 웅장하고 명료하게 그리는 것이 미술가들의 덕목으로 여겨졌다. 왕립미술원의 교수들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미술가를 길러내기 위한 교과과정을 개발했다.

몇몇 거장들의 화풍을 모범 답안으로 정해두고 기계적인 반복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는 교육 방식이었다. 석고상을 기계적으로 모사하는 데생도 왕립미술원의 교육과정에서 유래한 것이다. 왕립미술원 교수들은 회화작품을 주제에 따라 나누고, 이들 간의 위계질서를 정하게 된다. 학생들이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배우고 따라야할 그림과 그렇지 못한 저급한 수준의 그림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위계질서에서 가장 높은 등급에 위치한 그림은 역사화이다. 역사화는 신화나 성서 혹은 역사적 사건들을 묘사한 웅장하고 기념비적인 그림으로 위대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두 번째 등급의 그림은 인물화이다. 인물화는 실제 인물의 모습을 담은 그림인데, 그림에 담겨진다는 것은 이미 높은 사회적 신분과 부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단계의 그림은 풍경화이다. 화가의 시선이 닿은 자연의 한 단면을 그린 것이 풍경화이다. 가장 낮은 등급으로 여겨졌던 그림은 정물화이다. 꽃이나 과일 등 곧 시들어 버리거나 섞어 버릴 일시적인 대상들을 표현한 그림으로 주로 삶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밖에 등급에 들지 조차 못할 정도로 저급한 그림으로 여겨진 것이 있는데 바로 풍속화이다. 역사화가 위대한 인물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그렸다면, 풍속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묘사한다. 시장의 약장수가 등장하고, 젊은 여인에게 연애를 걸거나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의 모습, 술 마시며 떠들어 대는 게으른 주정뱅이가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프랑스 왕립미술원을 모방해 1744년 스페인의 펠리페 5세는 마드리드에 왕립미술원을 설립했고, 1768년 조지 3세에 의해 영국의 왕립미술원이 문을 열었다. 왕립미술원의 설립은 미술교육의 경직된 제도화를 가속시켰고, 그 가운데 미술권력이 탄생했으며, 미술을 제도권 그리고 비제도권으로 양분화하는 부정적인 현상들이 발생했다. 이러한 갈등이 19세기 중반 파리를 중심으로 극심한 충돌을 일으켰고, 보수적인 미술제도에 반기를 들었던 진취적인 미술가들에 의해 현대미술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아카데미의 폐쇄성에 대항했던 현대미술 선구자들 대부분이 역사적인 장면 보다 일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던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