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한국인들 사이에 ‘BBC가 민족 정론지’라는 말이 유행한다. 코로나19가 지구촌 전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외국의 주요언론은 한국정부의 민주성과 투명성 그리고 강력한 진단역량에 주목하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반면에 ‘조중동’ 같은 신문은 ‘우한 코로나’와 ‘중국인 입국금지’ 같은 후진적인 행태로 일관해 수준 높은 독자들의 질타(叱咤)를 받았다. 아직도 극우 유튜브 수용자들과 낙후지역 독자들은 이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한국 독자들이 외신을 신속하게 번역하여 SNS에 올리는 일이 일상화된 세상에 우리는 살아간다. 정보통신 강국의 국민답게 한국인들은 세계적인 문제와 동향 그리고 사실관계를 판단하면서 더는 보수신문을 믿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강화된 시기는 2019년에 아베 정부가 수출규제를 시작했던 때로 알려져 있다. 한국정부가 강력한 대응에 나서자 보수지들이 앞다투어 일본에 고개 숙이라는 논조(論調)를 펼쳤던 그때 국민은 대거 그들을 버렸다.

2020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세계 42위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절 31위를 기록했지만,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50위, 2014년 57위, 2015년 60위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70위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해 언론자유가 후퇴한 대표국가가 되었다. 한국의 보수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선진국’ 미국과 일본의 순위는 45위와 66위다.

언론자유지수가 전임정권과 비교해 현저히 상승하고 있지만, 언론인들의 수준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인 듯하다. 그 결과 ‘BBC 민족 정론지’ 주장으로 나타난 것이다. 참 우울한 일이다. MBC 피디 출신인 정길화 아주대 교수는 한국언론의 문제를 조급성, 전문성 부재, 정파성(政派性)의 세 가지로 설명한다.

남보다 앞서 기사를 송출해야 한다는 성과주의가 만들어낸 조급성은 기사의 신뢰도를 낮춘다. 인터넷상에 올라온 기사에서 우리는 비문(非文)과 틀린 맞춤법으로 범벅된 경우를 너무도 자주 찾아낸다. 전문성 없이 글을 쓰다 보니 기사의 내용과 질이 저급할 수밖에 없다. 저질 유튜브나 찌라시 수준을 넘지 못하는 기사도 적잖다는 얘기다.

정파성은 정당과 인물 그리고 지역을 특정해서 당위론적으로 기사를 제작하는 행태를 말한다. 기자가 속한 집단과 출신에 기초하여 색안경을 끼고 대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나날이 강고해지고 있다. 공정과 신속, 정확성과 무정파성을 전제로 해야 함에도 언론사와 종사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론의 소명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닌가.

외신이 늘 옳다는 주장은 당연히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모든 나라에는 고유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민족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신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언론마저 해외직구 해야 하나’라는 자조적(自嘲的)인 말이 떠돌고 있음은 우려스럽다.

그러하되 한국에도 BBC 같은 정론지가 나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