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바이러스에 봄을 빼앗긴 사람들을 위로하듯 예년보다 훨씬 진한 아카시 꽃의 향과 꿀이 도로를 따라 흐리기 시작했다. “우정, 즐거움, 깨끗한 마음”과 같은 꽃말 때문인지 비록 마스크를 썼지만, 사람들의 표정과 발걸음이 4월과는 비교가 안 되게 밝고 경쾌하다. 나무마다 고봉으로 핀 이팝나무꽃은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5월의 응원 선물이다.

“코로나19의 역설”이라는 뉴스를 보면서 필자는 교육계의 화두를 생각했다. 다음 뉴스들에서 코로나 19 이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같이 찾길 바란다. 그 답이 바로 우리 교육계가 실천해야 할 과제이다.

“코로나19에 지구는 회복 중, 맑아진 ‘중국·인도’ 하늘 눈길” “관광객 줄자, 60년 만에 맑아진 베네치아 운하” “인간에겐 치명적, 자연엔 치유 기회? 코로나가 바꾼 풍경들”

이들 뉴스를 한 문장으로 하면 “이기적인 인간이 사라지자 자연이 본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이다. ‘코로나가 바꾼 풍경들’에 나오는 내용을 일부 인용한다.

“코로나19로 인간의 발걸음이 봉쇄된 지구촌 곳곳에 뜻밖의 손님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략) 아르헨티나에서는 인적이 드물어진 해변 자동차 도로에서 바다사자가 누워 자기도 한다. (중략) 울릉도에서는 멸종된 줄 알았던 독도 강치가 나타났다는 소식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의 건강에는 치명적이지만, 자연에게는 치유의 기회로 다가오는 역설이다.”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자연을 해코지하고 살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간이 발 디디고 사는 곳 중에서 자연이 아닌 곳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사실을 잊고 마치 자연의 주인인 양 염치도 없이 자연을 군림하며 살고 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코로나19가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오늘도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마구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은 괜히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 안에는 오로지 이기심밖에 없다. 배려, 희생, 사랑 따위의 말들은 인간이 자신의 악성(惡性)을 감추기 위해 만든 위장(僞裝)막에 불과하다. 물론 선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들의 행동 또한 자신의 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필자는 지울 수 없다.

치유와 회복의 길에 든 자연과는 달리 교육계의 혼돈은 극에 달하고 있다. 학교 편의에 따라 강행된 온라인 수업 중 일부 수업은 교육계의 인재(人災)이다. 교사 중심의 온라인 수업은 학생들에게 그나마 있던 학교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이는 재난 수준이다. 일부 학생들은 자신들을 “숙제 노동자”라고까지 표현한다. 출석 체크를 위한 과제 학습에서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구조 신호를 학생들은 계속 보내고 있지만, 답을 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자연은 코로나19의 역설로 인해 회복되고 있지만, 학교는 온라인 수업의 역설에 무너지고 있다. 5월에는 교육도 자연처럼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해인 시인의 시를 전한다.

“(….) 피곤하고 산문적인/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우리네 가슴 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 (‘5월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