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은 봉

또 한 차례, 휘청휘청 파고드는 칼날들!

평생 부엉이 울음소리와 함께 살아도 좋다, 하고 어금니를 깨무는 동안, 성한 곳 하나 없는 몸, 만신창이 끝내 견뎌내지 못하고 내 안의 각자 선생이 달려나와, 만신창이 몸 훌쩍 어깨에 들쳐 멘다

종아리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검붉은 지렁이들!

징그러워하지 마라 지렁이들 꿀틀거려, 너는 아직 살아 있다, 하며 누덕누덕 기워진 몸이 낮게 내게 속삭인다

각자 선생이 곁에 있는 한, 번쩍 빛을 발하며, 칼날들 몸속 지나가도 좋다, 하며 상처투성이의 시간이 저 혼자 중얼거린다

이윽고 칼날들, 찢겨진 날개째 추락하는 소리 들린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상처와 고통과 분노가 깊어져 ‘묵언의 밤’에 잠 못 들어 하기도 한다. 시인은 이러한 상황에 빠져있는 자신을 각자 선생(깨달은 자아)이 용서, 위로, 치유와 구원의 경지로 이끌어주고 마음의 평화를 회복한다고 말하고 있다. 공감되는 시편이 아닐 수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