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김살로메 작가의 포토 에세이 ‘뜻밖의 시선’을 연재한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풍경과 사람의 순간을, 사진 곁들인 사색의 글로 갈무리하는 코너이다. 작가의 소박한 시선이 독자들과 호흡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심상치 않은 나날입니다. 전 지구촌을 장악한 바이러스 무리에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옵니다. 폭풍처럼 진군하는 저 기세 앞에서 평범한 일상이 꺾인 지 오래입니다. 안타깝게도 사회적 유폐의 시간이 친구처럼 따라붙는 날들입니다.

갇힌 세상, 여유가 넘쳐납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써보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행간을 살피는 망울은 금세 흐릿해지고, 자판을 두드리는 손길은 기다렸다는 듯 민첩함을 잃어갑니다. 위급은 불안을 낳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시간이 남아돈다 해도 불안한 마음이라면 집중도가 발휘될 리 없습니다. 엉킨 실타래처럼 온통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고개를 돌리고 호흡을 가다듬어 봅니다. 오후 봄 햇살이 부엌 구석진 곳까지 길게 와 닿습니다. 햇살에 겨워 블라인드를 내리려다만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한껏 다사로워진 빛살을 흐트러진 마음 깊숙이 끌어당깁니다. 금세 가슴 한 쪽이 따스해집니다. 느꺼웠든 부끄러웠든 우리 삶은 스스로의 도움만으로는 어림없었음을 자각합니다. 수고하고 짐 진 것들이 베푼 선의로 내 하루는 살쪄왔습니다. 이를 테면 저 깊게 퍼지는 봄 햇살 같은 소박한 모든 것들에게 하루를 빚지고 있는 것이지요. 사물일 수도, 생각일 수도, 더러는 사람일 수도 있는 그 모든 것들을 풍경이라 명명하겠습니다. 별 것 아닌 그 풍경들을 불러내 제 식으로 말을 걸고 스스로를 성찰할 참입니다.

표출되지 않은 결심이나 계획은 그야말로 미완의 설계일 뿐 완성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꿈만 꾸는 자리에는 진정한 영혼이 깃들 리 없습니다. 머리에 머문 생각들이 가슴으로 내려와 말이나 행동으로 발산될 때 제대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면 장고의 시간보다 어설프나마 행동하는 날들이 값질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날부터 한 장의 사진이 많은 말을 품고 있다고 느끼는 걸 어떻게 설명할까요. 한 컷 물상으로 앉은 그 품새에 많은 의미들이 녹아 있는 게 보입니다. 오도카니 앉은 그 말들을 진솔하게 번역하고픈 욕망이 생겼답니다. 글 쓰는 이로서 아주 늦은 자각이었지만 그 매혹은 뿌리치거나 무시할 만한 것이 못되었지요. 어떤 한 컷이 말을 걸어오면 반사적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로 정리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실제 풍경과 마음의 풍경 즉, 심상이 교집합을 이루는 한 지점에서 스파크가 일듯 새로운 말들이 마구 번져가는 것이지요.

저는 사진가는 아닙니다. 사진가가 될 마음도 없습니다. 사진에 관한한 예술적 눈썰미와 이 지면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지요. 미적 완성도에서 자유로운 사진일 때 제 글도 한껏 날개를 달 수 있겠지요. 앞으로 펼쳐질 에세이에 곁들이게 될 한 컷의 장면은 문화역사적 시각이나 사진학적 의미로서 언급될 일은 없을 거예요. 사진이 요구하는 객관적인 약속이나 양식에서 벗어나, 저만의 시각이나 감각으로 포착하고 감지한 것들을 언어로 옮길 테니까요. 하잘 것 없는 장면일지라도 가슴을 찌르는 제 식의 정서가 발동한다면 기꺼이 셔터를 누르고 자판을 두드리겠습니다. 여러 풍경이 선사할 뜻밖의 의미들을 풀어내는 이 작업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여전히 매체들은 바이러스 전파 소식으로 도배를 합니다. 배경으로 따라 붙는 ‘코로나19’의 로고는 어쩜 그리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에 반하여 영롱한지요. 그토록 강력한 전파력을 숨기고자 신비롭고 아리따운 모습으로 치장한 채 나타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주의 꽃을 가장한 저 바이러스는 어쩌면 인류 보편에게 전하는 서늘한 경고 같습니다. 무해한 타인의 선의를 헤아리지 못하거나, 소중한 것들은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곁에 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울림의 무늬 같은 것 말입니다.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소설가

삶이란 온전히 아름다운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참담하게 비극적인 것도 아니지요.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비관이나 불운을 곁에 두되, 그보다는 의식적인 낙관이나 희망으로 이 위기를 헤쳐 나갔으면 합니다. 험난한 시간을 어떻게든 견디는 것도 위에서 말한 풍경의 한 예가 될 수 있겠지요.

벨 소리에 현관문을 엽니다. 하 수상한 시절인데도 택배 아저씨의 수고로움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울릉도에서 지인이 햇명이 장아찌를 보내왔습니다. 나물향이 포장 박스를 뚫고 온 집안으로 번집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완연하고 인간적인 봄 내음입니다. 봄이면 새 잎에다 향기라지요. 봄이면 꽃이나 희망이라지요. 첫 사진 전송을 봄 명이나물이나 늦은 명자꽃으로 하려다 멈춥니다. 파문 앓는 여러 날들이 새순이나 꽃망울로 맺기까지, 차분한 기도보다 나을 게 없을 테니까요. 어찌할 줄 모르는 이 사회적 거리의 시간들이 저마다의 불꽃으로 타오를 수 있기만을!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사진= 소설가 김살로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