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내용
예고된 ‘인재’
해외 안전관리 방안 국내선축소
무리한 개발 목표 산자부가 지시
적색등급 지진 발생 분석도 안해
‘의혹 해소’ 시민 힘으로
전문가 지진 원인 발표 도태로
주민·단체 국민감사청구 시작
산자부 공익감사 중요성 높여

포항지열발전 기술개발사업 추진실태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1일 발표됐다. 사진은 포항지열발전소 전경.  /포항시 제공
포항지열발전 기술개발사업 추진실태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1일 발표됐다. 사진은 포항지열발전소 전경. /포항시 제공

감사원이 1일 포항지열발전 기술개발사업 추진실태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감사결과는 포항지진이 인재였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특히 본진인 포항지진에 앞서 2017년 4월 발생한 규모 3.1 지진에 대해 관계 기관들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당시 이를 적절하게 처리했더라면 ‘촉발’ 지진인 포항지진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도 각종 문제점이 발견됐다.

감사 결과를 토대로 포항지열발전 사업이 지진을 촉발시킨 과정을 상세하게 분석해 봤다.

◇ 감사 결과 위법·부당사항 20건

감사원의 감사결과 총 20건의 위법·부당사항이 확인됐다. 사업을 수행한 기관들에 대한 책임도 있지만, 산자부 등도 책임소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가장 먼저 감사원은 이번 감사 결과를 통해 컨소시엄이 스위스 바젤 사례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한 점을 지적했다. 스위스는 지난 2006년 규모 3.4 지진 이후 3년간 지진 위험도 분석 후 정부가 직접 사업중단 조치를 했다. 이는 스위스 바젤 심부지열개발 프로젝트의 신호등체계에 따른 조치였다. 신호등체계는 실시간으로 관측된 지진의 규모, 지반의 진동 수준 등에 따라 녹색, 황색, 적색 등 3단계로 구분해 물 주입을 중단하거나 배수 등으로 주입된 양을 낮춰 지진피해를 줄이는 안전관리 방안이다.

스위스 신호등체계에서는 적색단계에 해당하는 지진이 발생하면 수리자극을 중단하고 규제당국의 승인이 있어야 수리자극을 재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국내 컨소시엄이 마련한 자체 신호등체계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없었다.

또, 원안에는 산자부와 에너지기술평가원(이하 에기평), 포항시, 기상청 등 4개 기관에 수리자극 중 발생한 지진을 통보했어야 했다. 컨소시엄은 에기평에만 유선 보고, 나머지 3개 기관에는 이를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4개 기관 중 포항시와 기상청이 R&D 관리기관이나 규제기관이 아니라는 사유를 들어 보고대상을 제외하는 것으로 신호등체계를 변경했다.

산자부와 에기평의 허술한 사업 관리도 감사원에 의해 지적됐다. 특히, 처음부터 이 사업이 무리한 사업이었다는 것이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밝혀졌다.

지난 2010년 9월 산자부는 에너지기술개발사업 실행계획을 돌연 ㎽급, 5㎞ 시추로 상향했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에너지기술개발사업 실행계획 목표는 200㎾급, 3㎞ 시추였다. 이는 당시 전문가들이 국내 기술수준을 고려해 제안한 목표치였다. 산자부는 그러나 불과 6개월만에 개발목표를 높였다. 무리한 R&D 기획을 산자부가 직접 지시한 셈이다.

또 산자부는 사업비 규모를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게 하고자 500억원 이내로 하도록 무리하게 지시해 사업자인 넥스지오가 자금부족 등으로 중국 업체에 시추·물 주입 등을 일괄발주하게 만들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산자부가 적극적으로 해당 사업을 관리하지 않았다는 점도 감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컨소시엄이 3차 수리자극 중이었던 지난 2017년 4월 수정된 신호등체계의 적색 등급(규모 2.5 이상)에 해당하는 3.1 규모 지진이 발생했는데, 컨소시엄은 지진이 발생했다는 사실만 전달했을 뿐 지열발전과 관련한 지진이라는 점은 보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자부는 해외 지열발전 중단 사례 등을 통해 유발지진의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발지진 여부를 확인하거나 지진 위험도 분석을 하지 않았다. 이를 자연지진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에기평은 컨소시엄이 연차별 R&D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도 4차례 평가에서 과제 중단 등의 조치 없이 ‘계속’ 과제로 평가했다. 이에 더해 에기평이 2015년 12월까지였던 사업기간을 2년 연장(2017년 12월)하면서 연장 사유 등에 대한 검토를 소홀히 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이는 에기평이 위촉한 평가위원이 그간 사업에 투입된 비용을 고려해 온정적인 평가를 한 것으로 감사원은 파악했다.

감사원은 사업 시행사와 산업부, 에기평의 업무 소홀로 규모 3.1 지진이 발생한 후에도 수리자극이 계속돼 5차 수리자극(2017년 9월) 후 2달 후인 11월 규모 5.4 지진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산업부 담당자에게 경징계 이상의 징계처분을 하고, 에기평 관계자는 문책하라고 각 기관에 통보했다.

다만, 감사원은 컨소시엄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포항지역에 대해 지진 위험도를 평가하거나 비교·검토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줬다. 감사원은 대한지질학회의 자문을 얻은 결과 등을 고려했을 때, 부지 선정 단계에서 지질조사를 통해 지진 위험성을 검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시추 과정에서 지진 위험성 평가가 이뤄지기 어려운 점을 고려할 때, 컨소시엄이 시추 과정에서 단층의 존재를 알고 나서도 지진 위험성 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기 어렵다고 밝혔다.

높은 수리자극으로 불안안 지층을 자극, 지진을 촉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부 압력을 높인 사실이 있으나, 모든 자료를 제출받지 못해 상관관계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 감사원 감사 어떻게 이뤄졌나

감사원이 1일 포항 지열발전 기술개발사업 추진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하자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이뤄낸 승리’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포항주민들이 제기한 국민감사 청구를 시작으로 산업통상자원부의 공익감사 청구가 더해지며 그 중요성이 부각, 결론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지열발전 컨소시엄에 대한 20건의 위법·부당사항이 확인된 것이다.

이번 성과는 포항 주민들의 감사 필요성에 대한 적극적인 요구가 단초가 됐다. 감사 요청 시기도 2018년 11월 12일로 포항지진이 촉발 지진으로 결론이 나기 전인데, 여기서는 ‘포항(촉발)지진범시민대책위원회’와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 ‘한미장관맨션지진피해비상대채위원회’ 등이 나섰다. 당시 이들 단체는 포항지열발전소 유발지진이 철저히 은폐됐다며 감사원이 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언론과 전문가 사이에서 포항 지열발전 기술개발사업을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하자 선제적으로 나선 것이다.

2019년 3월 20일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지진발생 491일 만에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소에 의해 촉발됐다”고 결론을 내자 이번에는 산자부가 나섰다. 2019년 3월 25일 산자부는 “포항지진을 촉발한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사업에 대해 진행과정 및 부지 선정의 적정성 등을 철저하게 조사하기 위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감사원은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규명하고자 2019년 4월 24일 국민감사청구 심사위원회를 개최하고, 국민·공익감사청구사항을 병합해 감사하기로 했다.

이후 감사원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포항시,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했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사단법인 대한지질학회와 연구용역 계약을 체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감사를 수행했다.

감사는 ‘지진위험성 관리’와 ‘과제선정 및 관리’로 나눠 검토됐다. 감사청구 내용이 포항 지열발전 기술개발사업과 관련한 연구개발(R&D) 과제의 기획부터 부지선정, 수리자극 등 지진 발생 직전까지의 전 과정에 걸쳐 있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지진위험성 관리 분야에서는 사업 전 과정에서 사업자, 에기평, 산자부의 지진위험성 확인 및 대응이 적정했는지에 대해 검토했다. 또한 과제 선정 및 관리에서는 사업자의 과제수행은 물론, 과제 및 사업자 선정, 과제관리 등 에기평, 산자부의 관리감독이 적정했는지 검토했다.

1일 발표된 감사결과에서 감사원은 “2017년 11월 15일 포항시 흥해읍 지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이후 포항 지열발전 기술개발사업이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됐고, 이와 관련한 국민감사청구 및 공익감사청구가 감사원에 접수돼 감사를 실시하게 됐다”고 감사 배경을 밝혔다. /전준혁·이바름기자

    전준혁·이바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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