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중우(衆愚)정치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를 고찰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국가론과 정치학에서 민주제의 타락한 정체(政體)에 부여한 명칭이다. 폭민 정치라고도 부르며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한 대중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치를 의미한다. 지성인이나 다수대중이나 똑같이 한 표다.

게다가 수적으로 엘리트보다 일반대중이 더 많다.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가 월등히 많은 대중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으므로 필연적으로 이들의 기호에 맞는 정책이나 포퓰리즘을 쏟아낸다. 투표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비판기능을 갖춘 소수 엘리트보다 대중의 수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로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닌 중우정치 즉 가짜 민주주의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민주국가에서는 국민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양당제 혹은 몇 개의 당이 정치판을 독점하여 야합으로 나눠먹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정치세력들이 한 계층을 형성하여 민주주의를 통해서 자신들을 뽑아준 대중을 위하기보다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나 속한 집단을 위한 정치를 강화해 반민주주의로 변질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관심 혹은 비이성적인 대중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보다는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지역적으로 편중된 지역감정에 매몰되어 이성보다는 감성, 일시적 충동에 의해 정당이나 후보자를 선택하는 행위가 반복됨으로써 중우정치의 현실로 빠져들어 대중의 다양성이 정치의 다양성으로 직결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엘리트들의 오만정치다. ‘국민들이 원하기 때문에’라는 수식어를 내세우는 경우는 그 국민이라는 게 그의 머릿속에 기억된 다수를 잘못 지칭하여 필요충분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TV나 신문보다는 유튜브나 SNS를 선호하는 시대흐름에 편승하여 대중들을 선동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민주주의의 운영주체인 시민의 역량과 성숙도가 낮을수록 이런 매스미디어매체의 선전과 선동에 휘둘리기 쉽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세뇌된 대중들은 명백한 진실조차 믿지 않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사회를 둘로 쪼개 놓은 조국사태는 아직까지 정치를 혼란과 갈등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이런 가짜 민주주의의 근원은 과학과 이성, 진실이 부정된 자리에 궤변과 독선, 거짓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반지성주의가 우리 사회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장관시절 당시 법무부 인권국장 자리에 있던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는 윤석열 총장을 비롯해 검찰 쿠데타 세력 명단이라며 자신의 SNS에 게시했다. 조국 전 장관을 개혁파로 기묘사화의 피해자인 정암 조광조에 비유하고, 세도를 부리던 대윤, 소윤인 윤임과 윤원형에는 윤석열 총장과 윤대진 부원장을 빗대며, 명단 속 인물들이 아직도 고위직에 남아있기에, ‘2020년에는 기필코,’ 라면서 국민들이 야차(사람을 해치는 사나운 귀신)들에게 다치지 않도록 널리 퍼뜨려 달라고 주문했다.

이단 종교보다 더 무서운 민주주의의 가장 암적인 존재는 바로 이런 이단(異端) 정치인들이 설치는 정치판이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