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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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각급 학교들의 개학이 한 달 이상 연기되고 있다. 지금쯤이면 벚꽃이 피는 캠퍼스에 새내기들의 재잘거림이 가득하고 물오르는 젊은이들의 싱그러움이 솟아오를 그런 모습이건만 캠퍼스는 고요하고 적막하기 그지 없다.

언제 개학이 될지 모를 상황에서 ‘9월 학기제’ 논의가 불을 지폈다. 어차피 개학이 늦어질 바에는 아예 9월에 학기를 시작하자는 주장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개학이 세 차례나 계속 연기되는 상황에서 이 기회에 차라리 한국도 1학기 자체를 천재지변으로 없어진 것으로 하고 2020년 9월 1일부터 2020년도 학사일정을 시작하자는 논리가 나오고 있다.

학기란 한 학년을 나눈 기간이며, 학기의 수에 따라 2학기제, 3학기제, 4학기제 등으로 구분된다. 4학기제는 정말 낯선 제도인데 필자는 첫 유학지인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4학기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 학기제를 그렇게 잘게 자르면 짧은 기간 한 과목을 소화하면서 훨씬 학습 진도가 빠르고 더 열심히 공부하는 순효과가 있어 보였다.

학년도를 시작하는 달이나 계절에 따라서 학기제라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9월에 신학기를 시작하면 9월 신학기제(또는 가을학기제)라고 하는 식이다. OECD 회원국 중 북반구에서 봄학기제를 채택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북한까지 포함한다면 북반구의 봄학기제는 세 나라뿐이고 대부분의 유럽국가와 미국은 9월 가을 학기제이다.

국가별로 학기제가 어떻게 정해져 있느냐에 따라 한 나라 전체의 교육 행정이 결정되기도 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돌이켜 보면, 일제시대 일본식 4월 봄학기제가 정착되었고, 해방이 되면서 미군정에 따라 9월 가을학기제로 바뀌었다가 정부 수립 이후 교육법을 제정하면서 1950년부터 다시 일본식 4월 신학기제로 돌아갔다. 사실상 주소체계, 행정 사법 고시 등 많은 제도가 일본식을 따랐기 때문에 일본식 제도라는 비판도 있었다.

이후 5·16 군사정권이 4월이던 신학기를 3월로 변경하여 1962년부터 현행 3월 봄학기제가 확립되었다. 겨울인 1, 2월에 방학을 하여 학교 난방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 큰 이유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2011년 7월 고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대학이 학칙으로 가을학기제 학년도를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가을 학기제를 채택한 학교는 거의 없다. 이는 대학입시 등 여러 제도가 아직 봄학기제에 맞추어 있기 때문이다.

봄학기제는 한국교육의 국제화 관점에서는 매우 불리한 제도이다. 한국 학생이 외국 학교로 전학하거나 진학하면 한 학년을 건너뛰거나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한다. 외국 학생이 한국에 와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선 학년도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학기제 변경 논란은 계속될 듯하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개학 시기 논의와 연계해 ‘9월 학기제 시행’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현 정부의 기조로 볼 때 가을학기제는 다시 물 건너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