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 현

새들은 망명정부를 꿈꾸며 비행한다

머리 둘 곳 하나 없는 세상

어쩌면 이 비행이 멈추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떠남에 익숙해져버렸다

갈망의 주머니를 안고 사는 유목민처럼

내 가진 것이라곤 모래바람을 막을 수 있는 모포 한 장과

반가운 손님을 대접할 말 우유 한 잔이 전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연녹빛 잎사귀들의 속삭임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창연한 가을빛에 넋을 잃었던 곳

안온한 둥지에 세월을 묻었다

바람에 허리가 꺾인 어느 겨울날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뚝 뚝 비명을 지를 때

소리의 굉음을 피해 도망치고 말았다

새들은 망명정부를 꿈꾸며 비행한다

유전자 속에 각인된 본능이

기억속에 흐려지고 찢겨져 나가길 기다리며

새날의 새 둥지를 찾아

무정부주의자는

저무는 햇살을 등에 업고 장엄하게 날아오른다

이 시에 나오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이 찾아 떠나는 ‘망명정부’는 어딜까. 그곳은 진정한 자유가 있고, 신과 인간이 공존하며 어떤 부조리나 불균형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리라. 정의와 사랑이 존재하고 언제든 비상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그런 곳은 현실 속에 있지 않으므로 인간은 끝없이 그곳을 열망하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