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영 민

설풋한 모과 하나를 주워다가

책상에 올려놓았다

저 흉중에도 들고나는 것이 있어

색이 돋고 향기가 난다

둥근 테두리에 들어 있는

한 켠 공중(空中)

가끔 코를 대고

흠, 들이마시다 보면

어릴 적 맡은 어머니 겨드랑이 냄새가 났다

모과의 얼굴 한쪽이 조금씩 썩기 시작했다

모과 속에 들어 있던 긴 시간

한여름의

그늘 냄새, 매미 소리

내 방 허공 중에

매일 하루치의 제 것을 조금씩 꺼내 피워두던

모과 하나가

말끔히 한 몸을 태워

검은 등신불로 앉아 있다

시인은 책상 위에 놓여 조금씩 썩어가는 모과를 바라보며 모과의 생육과 결실, 소멸의 과정에 스며든 그 무엇을 생각하고 있다. 이를테면 햇빛과 물, 시간과 누군가의 관심과 시선 같은 것들의 작용이 이루어 낸 향기롭고 탐스러운 열매에 이른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말끔히 한 몸을 태워 검은 등신불로 앉아 있다’라는 마지막 표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