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묘봉산 옛 절터 석남사지에 위치
조선 중기 고승 남파대사 유적
비각 문살 훼손·대나무 수풀에 방치
향토사학자 “市 차원 보존 방안 논의를”

2005년 건립됐던 당시의 남파대사 비각.

조선시대 선(禪)·교(敎) 양종을 이끌었던 인물로서 승병의 최고 책임자인 수호도총섭(守護都總攝)을 지낸 남파대사(南坡大師·1740~1817). 포항시 남구 장기면 묘봉산 자락에 있는 옛 절터 석남사지(石南寺址)에 위치한 그의 비석이 보관된 비각의 문살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어 시 차원의 적극적인 보호·관리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비각은 자라난 대나무 수풀 속에 방치돼 있어 관리 보호가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파대사비는 포항 장기 출신의 조선 중기의 고승 남파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남파대사가 입적한 다음 해인 1818년에 건립된 이 비석은 높이 170㎝, 폭 80㎝의 화강암 비석으로, 조선 시대 명필로 이름을 날린 승려 계오가 비문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오랫동안 폐허가 된 절터 잡초 속에 방치되다시피 해 마멸이 심하게 진행된 것을 2005년 11월 포항시에서 비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비문에 따르면, 남파대사는 조선 영조 경신년(1740) 장기에서 태어나 순조 정축년(1817)에 향리인 장기 석남사에서 입적(향년 78세)한 조선조 때 고승이다. 이름은 화묵(華默), 자는 자은(自隱)이라고 했으며 남파는 호(號)다. 속성은 이(李) 씨로 12세 때 삭발, 용계(龍溪) 대사로부터 계(戒)를 받았다. 화엄경 십지론의 대조종으로 승과에 합격한 후 나중 대선과 대사에 올랐으며, 밀양 표충사 수호도총섭(守護都總攝)을 지냈다. 특히 조선조 때 번창한 선(禪)·교(敎) 양종의 맥이 보광대사로부터 시작해 회당대사 → 서악대사 → 용계대사 → 남파대사로 이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남파대사는 조선조 때 선교 양종을 두루 섭렵한 화엄경의 조종으로 일컬어질 정도의 고승이었다.

그런 만큼 남파대사비는 대사의 유일한 옛 비석이라는 점과 함께 비문의 글씨 또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향토사학자 황인(70) 씨는 이 남파대사비를 문화재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황 씨는 “남파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석남사지를 발굴해 문화자원으로 개발토록 촉구한 덕분에 그래도 이 비문이 오늘날까지 이나마 보존되고 있는 것”이라며 “지난해부터 이 비각을 둘러싼 문살들이 부서지기 시작해 앞으로 얼마나 더 훼손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시 차원의 적극적인 보호 관리가 하루빨리 이뤄져 유지관리는 물론 향후 보존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살이 부서진 남파대사 비각.
문살이 부서진 남파대사 비각.

그는 또 “남파대사는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서 조선 시대 명필이었던 계오 스님이 비문을 지어 비석을 지을 만큼 뛰어난 분이었다”며 “하루빨리 보수작업을 거쳐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인물, 연혁 등에 대한 역사·문헌적 고증을 강화하고 문화재 지정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황 씨는 특히 “비문 중 20여 자가 이미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됐는가 하면 일부 한자도 점차 훼손이 심해지고 있다”며 “남파대사 비각을 하루빨리 문화재로 지정해야만 더 이상의 훼손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남파대사비는 조선 시대 최대 명필이자 유학자였던 계오 스님의 서체 연구는 물론 비문 내용으로도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한 만큼 하루빨리 문화재 지정 등 보존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남파대사 비각은 장기면 소재지에서 하천길을 따라 서쪽으로 6km쯤 떨어져 있는 괴정마을(방산2리) 서쪽 산골짜기(묘봉산)에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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