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여행자에게도 봄은 다가오고

숙소 베란다에서 바라본 카잔 풍경. 시내 곳곳에 공원과 우거진 숲이 많았다.
숙소 베란다에서 바라본 카잔 풍경. 시내 곳곳에 공원과 우거진 숲이 많았다.

◇ 밀밭 나비떼를 뚫고 카잔으로 달리다

우파에서 나와 드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데 호분분 호분분했다. 나비들이 얼마나 많은지 노란 꽃잎이 바람 따라 날리는 듯했다.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더라면 볼만했겠지만... 참혹한(?) 상황이 이어졌다.

나비떼를 뚫고 나오니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헬멧과 슈트까지 나비 시체로 범벅이 되었다. 본의 아니게 살생하고 업을 쌓았다. 오토바이고 라이딩 기어고 나비가 부딪치고 터지며 묻은 노란 체액으로 비린내가 진동했다. 허물을 벗고 드디어 하늘을 나나 했더니 곧 비참하게 생을 마감해버린 불쌍한 것들. 나비떼는 카잔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나타났다.

이제 한국 시간보다 6시간이 빠르다. 시간도 공간도 근미래로 이동한 기분이다. 이곳은 이제 농사철이 시작된 듯. 우랄산맥을 넘은 이후 날씨도 완전히 봄이다. 더는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르겠다. 곳곳에 농기계들이 넓은 들을 일구고 있다. 도로가에 서 있는 마을 상징물도 밀을 소재로 한 곳이 많다. 나베레츠니라는 곳에 있는 케밥집에서 거하게 점심을 먹었다. 대부분 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사 먹거나 요리해서 끼니를 해결하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식사를 하자 싶어 찾았다.

 

카잔에서 묵었던 숙소 건물. 낡은 아파트의 일부 공간을 숙박업소로 활용하고 있었다.
카잔에서 묵었던 숙소 건물. 낡은 아파트의 일부 공간을 숙박업소로 활용하고 있었다.

식당에 가면 러시아어를 읽을 수 없으니 메뉴판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이도 사진과 가격표가 크게 붙어 있었다. ‘베친’을 시켜 먹었는데 씹는 순간 전통시장 할머니 순대 좌판에 앉은 기분이었다.

고기 맛이 이상해 무엇이냐고 직원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 번역 어플을 이용해 ‘간’이라고 알려준다. 카잔의 숙소 직원도 여권을 보더니 똑똑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인사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제외하고 러시아에서 러시아인에게 거의 유일하게 들은 우리 말이 ‘간’과 ‘안녕하세요’였다.

도로에서 모스크바 표지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모스크바까지 약 700킬로미터가 남았다. 내일 모스크바 외곽까지 이동하고 모레 들어가는 걸로 일정을 잡았다. 현묵 군이 모스크바 한국 대사관에 연락했는데 조지아를 통해 육로로 터키로 들어가는 건 피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최근 터키 국경지역 정세가 좋지 않아 여행 자제 경보가 내려졌다. 원래는 터키로 해서 유럽 남부를 여행하고 북쪽으로 빠르게 이동할 계획이었다. 모스크바 가는 동안 좀 더 고민해서 계획을 다시 짜는 걸로.

두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묻는 것이었다.

“까레이스키!”라고 하자

또 북인지 남인지 궁금해 했다.

언제쯤 남과 북을 나눌 필요가 없을지.

‘베친’, 장작불에 구운 간 요리다. 직원이 ‘소의 간’이라고 알려주었다.
‘베친’, 장작불에 구운 간 요리다. 직원이 ‘소의 간’이라고 알려주었다.

◇ 옛 소련의 낡은 아파트에서 하룻밤

조금씩 벌어지더니 부츠 굽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새 걸로 구입한 라이딩 기어인데. 본사가 이탈리아에 있으니 가는 길에 들러 수리를 받을 생각이다.

‘이탈리아 명품 부츠’라는 홍보 문구를 보고 구입했으나 품질은 명품이라 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그때까지 밑창이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꽤나 평이 좋은 브랜드였는데 뽑기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일까.

우선 덕테이프로 임시로 수선했다. 부츠뿐만 아니라 슈트까지 여기저기 해져 터지기 시작하니 이 정도면 라이딩 기어의 반란이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떨어진 곳들을 찾아 또다시 꿰매고 수선했다.

요제프 브로드스키의 ‘하나 반짜리 방’ 같은 곳이 오늘 카잔에서 잡은 숙소다. 소련 시절 지어진 낡고 어두운 아파트인데 5평쯤 되는 작은 방 두 개가 욕실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구조다. 9층 건물인데 엘리베이터는 성인 2명이 타도 비좁다. 일부는 숙박시설로 사용하고 또 일부는 실제 입주민이 살고 있다.

요제프 브로드스키의 ‘하나 반짜리 방에서’는 수필집이다.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으나 오래전 절판된 책이다. 소설가 안정효 씨가 번역했다.

 

숙소 내부 전경. 창틀은 나무였고 가구도 오랜 세월 바꾸지 않은 듯했다.
숙소 내부 전경. 창틀은 나무였고 가구도 오랜 세월 바꾸지 않은 듯했다.

‘러시아의 우울’, ‘단테의 그늘에서’, ‘그림자를 위하여’ 등 10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하나 반짜리 방에서’는 그 중 한 편인데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매우 작은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1940년 소련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강제노동수용소에 유배당하기도 했고, 결국 1972년 추방당해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이 살았던 공간과 부모님, 자신의 삶에 대한 생생하게 묘사했다. ‘열다섯 살 이후’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 그가 했던 일은 부모님 방과 자신의 ‘반짜리 방’ 사이에 늘어나는 책과 책장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는 일이었다. 그의 부모는 두터운 휘장을 쳐서 사생활(?)을 보호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예민한 사춘기 소년에게 책은 정신적 물리적 방벽 역할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해결 방법은 내 쪽에서 점점 더 책장을 많이 쌓아 올리고, 부모의 방 쪽에서는 휘장을 점점 더 두텁게 치는 것이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들은 이 해결 방법과 문제의 본질 자체를 둘 다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들과 친구들은 책보다 훨씬 천천히 그 수량이 늘어나게 마련이었고, 그뿐 아니라 책은 일단 소유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파트였음에도 창틀은 나무고 좁은 베란다는 바닥이 기울었고 녹슨 난간이 아슬했다. 블라디미르는 숲이 우거진 도시다. 나무들이 낡은 아파트들을 숨기고 감싸고 있었다. 숙소 아래서 쉬고 있는데 새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간간히 섞여 들려왔다.

베란다에서 두 아저씨가 고개를 내밀고 계속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묻는 것이었다.

“까레이스키!”라고 하자 또 북인지 남인지 궁금해 했다. 언제쯤에야 남과 북을 나눌 필요가 없을지.

 

부츠의 뒷굽이 벌어져 덕테이프로 임시로 붙였다.
부츠의 뒷굽이 벌어져 덕테이프로 임시로 붙였다.

◇ 모스크바까지 남은 거리 170킬로미터

드디어 모스크바로 입성하는 날, 어제는 봄이더니 오늘 날씨는 여름이었다. 28도까지 기온이 올랐다. 오토바이의 매력은 많고 많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가장 큰 단점은 몸을 드러내고 타니 날씨에 취약하다는 것.

오늘처럼 기온이 올라가는 날 아스팔트 위에 있으면 금방 지친다. 이동하는 동안 1.6리터 생수병을 다 비우고도 목이 탔다. 무거운 라이딩 기어 안으로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앞에 매연을 뿜는 낡은 트럭이라도 있으면 그야말로 고문에 가깝다.

지난 주 눈보라를 맞았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뜨거운 여름을 맛보는 중. 이제 곧 남쪽으로 가야하는데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지금 슈트로는 버티기 힘들 듯. 어떻게 해야 할지 달리면서 계속 고민했다. 러시아에 들어온 지 17일째, 어제까지만 해도 머뭇거리기 일쑤였는데 이제야 가스차니짜(휴게 음식점)에서 음식 주문하는 요령이 생겼다. 워낙 음식값이 저렴하니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에겐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빵 두 조각과 닭고기 커리 볶음밥, 커피까지 99루블(약 1700원). 매번 음식 이름을 외웠다가도 막상 주문하려면 발음이 잘 되지 않는다. 빵은 클리에프, 볶음밥은 블로우프, 커피는 코페. 모스크바까진 이제 170킬로미터쯤 남았다.

하필 3일 내내 비가 내릴 거란다. 모스크바에서 며칠 발이 묶이겠다.   /조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