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먹먹할 따름이다. 처음에는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1월이 총알처럼 지나고, 2월이 어영부영 물러나려고 한다”라고 쓰려 했다. 그런데 3월을 한 주 남겨둔 지난주부터 1분 1초가 1년보다 길다. 기하급수라는 말이 부족한 이제는 자고 일어나기가 무섭다.

前門拒虎後門進狼(전문거호후문진랑)이라는 말이 있다.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에서 이리가 닥쳐온다”라는 뜻이다.

바이러스와 숫자가 주는 두려움과 공포에 사람들은 패닉 상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 또한 우리 국민이 거뜬히 이겨내리라는 것을!

필자는 주말에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의 교복을 찾으러 시내에 있는 교복사에 갔다.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아이가 말했다.

“아빠, 코로나 때문에 교복사 앞에서 전화하면 바로 준대. 차에서 내리지 말고 꼭 전화해. 알았지”

교복사로 향하는 내내 눈부시도록 맑고 아름다운 하늘이 자신을 봐 달라며 따라왔다. 거리에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뉴스는 사실이었다. 동네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조금 차를 몰고 나가자 바다를 배경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을 보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자가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전문가의 말이 떠올랐다. 예방수칙을 지키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필자의 면역력까지 높여주었다. 예방이 백신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거리의 많은 상점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교복사에 도착할 무렵 도로를 응시하고 있는 어느 상점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눈, 그 눈에서 기대와 희망을 찾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필자의 오판이었다. 가계를 지나치려는 찰나에 밖을 향해 손 흔드는 그를 보았다. 그 손 흔듦은 필자의 생각이 틀렸음을 말해주는 손사래였다. 도로까지 나와 교복을 건네는 직원의 밝은 미소에서 필자는 희망을 보았다.

집으로 가면서 필자는 조수석에 놓인 교복을 보았다. “벌써”라는 말이 소리 없이 터지기 시작한 산수유꽃처럼 터져 나왔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아이는 만개한 봄꽃이 되어 교복을 맞이했다. 그리고 바로 교복을 입고 패션쇼를 했다. 그 모습에 필자의 가족은 코로나의 스트레스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됐다.

그런데 즐거움도 잠시였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느낄 암담함을 필자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학원을 가도 걱정이고, 안 가면 더 걱정이니 어떻게 안 보내겠어요” 개학을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에도 시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들의 마음을 교육 관계자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제안한다.

“수행평가, 서술형 평가와 같은 보여주기식 시험 개선! 지나치게 높은 수행평가 비율 조정!”

이 나라 교육이 지금과 같은 혼돈에 빠진 것은 평가 때문이다. 평가를 개선하지 않고는 결코 교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교육계의 진리이다. 그런데 그 평가가 정권에 너무 휘둘리고 있다. 예전의 평가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다간 코로나19 사태는 국민의 힘으로 곧 종식되겠지만, 교육계의 혼돈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