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바이칼호의 오염을 막을 방법은…

유라시아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바이칼호. 5월 하순에도 호수 가장자리에 얼음이 그대로인 곳도 있다.
유라시아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바이칼호. 5월 하순에도 호수 가장자리에 얼음이 그대로인 곳도 있다.

◇시리도록 푸른 호수를 지나다

드디어 바이칼호를 보았다. 집을 떠난 지 11일만이었다. 유라시아대륙에서 가장 큰 호수이자 아직도 원시 상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바이칼호는 눈부시게 푸르고 아름다웠다. 6월이 가까워졌는데도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아 얼음이 호수 가장자리에 밀려와 있었다.

바이칼 호수 남쪽엔 설산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태고부터 저 산의 눈이 봄볕에 녹아 숲을 적시고 낮은 곳으로 흘러 지금의 바이칼을 만들었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호수 그 자체가 푸른 보석이지만 가까이 가면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지천을 통해 흘러 들어간다. 바이칼호의 수원이 되는 강은 300개가 넘고 이렇게 바이칼호에 담긴 물은 안가라 강과 예니세이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나간다. 호숫가에 마을에 쌓인 쓰레기를 보며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는 말을 실감한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쓰레기와 오수가 바이칼호를 더럽힐 것이다.

바이칼호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러시아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바이칼호가 관광지화 되면서 방문객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09년에는 30만 명 수준이었던 것이 2015년에 130만 명을 넘어섰다는 기사를 읽은 것이 오래 전이었으니 그보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훨씬 많은 사람들이 바이칼호를 찾을 것이다.

바이칼호에서만 사는 물고기인 ‘오물’이 크게 줄고 대신 녹조가 계속 늘고 있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 분별없이 버린 쓰레기와 폐수 때문일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주변 설산의 눈이 녹고 수원도 메말라 바이칼호로 흘러가는 수량도 그만큼 줄어들어 오염도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날씨가 더워질수록 수온이 올라갈 테고 생태계도 바뀌고 자정 능력도 떨어지겠지. 낮은 수온에서만 서식이 가능한 ‘오물’이 급격히 줄어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어쨌거나 멀리서 본 바이칼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횡단 여행자들이 대부분 묵어가는 알혼섬에 가는 건 깔끔하게 포기했다. 바이칼호 주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이르쿠츠크로 바로 달렸다.
 

바이칼호의 남쪽에는 눈 쌓인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바이칼호의 남쪽에는 눈 쌓인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멀리서 보면 푸른보석 같은 ‘바이칼호’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안고
눈을 뗄 수 없을만큼 눈부신 푸르름을 뽐낸다

◇울창한 타이가 숲을 지나 이르쿠츠크에

바이칼 호수를 지나 이르쿠츠크로 가는 타이가 숲은 지금까지 달려본 곳 중에 손꼽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헬멧 실드를 올리고 달리니 나무 향기가 진하다. 어제 고생한 걸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바이칼호로 오며 길을 잘못 들어 비포장도로를 100킬로미터쯤 달렸지만, 숲길을 그만큼 달렸으니. 이르쿠츠크 시내에 들어오니 이전 도시들과는 다르게 풍요로운 기운이 가득하다. 숲과 강과 호수를 가까이 두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런 기운이 모이는 것이리라.

이르쿠츠크의 숙소는 아주 낡은 저택을 개조한 곳(세븐 트레블 호스텔)이었다. 도착했을 때 철문이 굳게 닫혀 있고 인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영업하지 않는 줄 알고 한참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마당을 청소하러 나온 직원에게 손을 흔들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오토바이도 지하 창고에 주차하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6인실 1박에 500루블, 우리 돈으로 1만 원도 하지 않았지만 침구도 깨끗하고, 요리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엌까지 있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니 잠이 쏟아졌다. 집을 떠나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어떻게든 빨리 시베리아를 벗어나 모스크바에 도착해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서야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점심때까지 침대에서 꼼짝 않고 잠만 잤다.

 

자동차 부품매장과 정비소가 밀집된 작은 식당에서 끼니를 때웠다.
자동차 부품매장과 정비소가 밀집된 작은 식당에서 끼니를 때웠다.

5,000킬로미터 가까이 달린 터라 오토바이 정비가 필요했다. 여분의 엔진오일과 오일 필터, 체인 루브를 구입해야 했다.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유명한 오토바이 숍을 찾아 타박타박 한 시간쯤 걸었다. 가는 길에 우연히 작은 헌책방 ‘북박스’를 만났다. 이번 여행에선 굳이 책방을 찾아다니지 않기로 했다. 여유가 되면 찾아보고 아니면 느긋하게 달리며 즐기기로 했었다. 그래도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냥 스쳐 지났을 수도 있었던 북박스가 멀리서도 보였다. 책방지기 나딤에게 인사하고 책방을 구경했다. 5평 남짓 될까. 19세기에 지어진 작고 오래된 목조 건물에 책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문을 연 지는 5개월이지만 자신의 파트너는 10년 동안 책방을 운영했단다.

책방에서 유일한 한국책(대원사 빛깔 있는 책들 ‘탈’)도 바로 꺼내서 보여주고 한국어판 러시아어 교재도 찾아주었다. 얼마 전 바이칼의 식물에 관한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이르쿠츠크에 온 한국인들이 다녀가기도 했단다. 사진책에 관심 있다니 바이칼에 관한 사진집도 바로 꺼내주었다. 책방을 돌아보다 바이칼 주변에 사는 새들을 세밀화로 그린 아담한 책이 탐났지만 내려놓았다. 오토바이로 여행 중이라 책을 살 수 없어 미안하다 말했다. 서로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고 문을 열고 나오는데 나딤이 붙잡으며 보여줄 것이 있노라 했다. 1912년에 출간된 삽화가 들어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초판본이었다. ‘전쟁과 평화’가 책으로 묶여 나온 건 1869년이고 이렇게 삽화가 들어간 건 이 책이 처음이라고 했다. 장정도 훌륭하고 삽화도 아름다웠다. 3권이 한 세트였고 가격은 4만 루블. 현재 우리 돈으로 75만원.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며 100년 전 잉크와 종이 냄새를 맡았다. 여유 있는 여행자였다면 까짓 지갑을 털었을 테다.

 

이르쿠츠크의 상징 바브르 상.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130지구 입구.
이르쿠츠크의 상징 바브르 상.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130지구 입구.

◇ ‘전쟁과 평화’ 초판본을 만나다

엔진오일 3리터를 들고 오는 길에 장을 봤다. 라면 5개, 스프 5개, 빵, 쨈, 그리고 얇은 파스타면을 샀다. 라면이나 스프를 끓일 때 파스타면을 추가로 넣어서 양을 불린다. 오토바이로 이동하면서 매 끼니마다 식당에 가서 먹는 건 귀찮기도 하고 사치다. 출출할 때마다 간단하게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요리를 직접 하는 수밖에. 꽤 많이 샀다고 생각했는데 400루블, 약 8천 원어치다. 숙소에 장본 것을 가져다 놓고 시내를 쏘다녔다. 지도를 보고 주로 동상을 기점으로 삼아 돌아다니니 편했다. 이르쿠츠크의 상징 담비를 물고 있는 바브르(호랑이)를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의관 간호사 기념비, 알렉산더 3세, 극작가 밤필로프, 레닌, 다시 바브르로 돌아오는 코스로 산책했다. 그리고 130지구에서 거리공연을 보는 걸로 마무리. 130지구는 관광객도 많고 거리 끝에 대형 백화점이 있었다. 중국 관광객이 현지인만큼 많았다. 그래선지 간판에도 중국어 표기가 많았다. 중국과 그리 멀지 않으니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올 수 있겠지.

 

헌책방 북박스의 책방지기 나딤. 이곳에서 몇 권의 한국 책을 발견했다.
헌책방 북박스의 책방지기 나딤. 이곳에서 몇 권의 한국 책을 발견했다.

이르쿠츠크에는 아름다운 건물이 많은데 특히 옛 목조주택은 예술품을 보는 듯하다. 나무를 아낌없이 쓸 수 있는 자연 환경의 결과물이리라. 하지만 대부분 낡고 관리가 되지 않는 듯하여 안타깝다. 보존만 잘 한다면 그 자체가 이르쿠츠크의 훌륭한 문화자산일 텐데 버려져 폐가가 되어가는 건물들이 내가 돌아본 지역만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바이칼과 타이가 숲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집과 일상용품들이 후대까지 잘 전해졌으면 좋겠다. 숙소로 복귀하기 전 다시 시장에 들렀다. 같은 방을 쓰는 중국 무역상 류 씨가 왜 이르쿠츠크에 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러시아인, 몽골인, 중국인….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근대 이전에는 모피를 거래하기 위해, 지금은 생필품을 비롯한 여러 물건을 구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바이칼호 주변 사람들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르쿠츠크를 찾는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시내를 관통하는 앙가라 강을 따라 걸었다. 앙가라 강 둔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르쿠츠크에서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 생각했다. 편하게 와서 이곳에서 오토바이를 빌린 다음 바이칼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갈 길 바쁜 여행자니 다음 여정을 미룰 수가 없었다.   /조경국

 

나딤이 보여준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 초판본.
나딤이 보여준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 초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