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지 꼭 113년째 되는 날이다. 1907년 2월 21일 대구의 광문사 사장 김광제와 부사장 서상돈 등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인사들이 대한매일신보에 “나라의 빚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자”는 취지의 발기문을 게재한 날이다.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을 알린 날이자 기념일이다.

당시 일본은 조선 경제를 파탄으로 이끌어 한국을 침탈할 목적으로 일본의 차관을 강요했다. 어쩔수 없이 조선이 진 빚이 1천300만원이다. 대구에서 발단한 민간 주도의 주권회복운동은 이날 후 전국 곳곳에서 호응을 얻기 시작해 우리나라 최초의 국난극복 민간운동이라는 신기록을 남기게 된다.

특히 이 운동은 민족자본가와 지식층, 여성계, 노동자 등을 총망라한 지지를 받았다. 당시 양반집 부녀자는 물론 최하류층의 기생들까지도 동참함으로써 한국최초의 여성운동이라 불리게 된다.

남자는 3개월 동안 담배를 끊어 돈을 모으자 했으며 여성들은 자신이 가진 비녀와 가락지 등 패물을 내놓았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몰렸을 때 국민이 금모으기에 동참했던 것과 유사하다. 당시 고종도 이 소식을 듣고 담배를 끊고 국채 갚기에 나섰다고 한다.

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이며 그 정신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는 곳이다. 독립운동 등 애국의 도시로 자부하는 대구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시민의 정신적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대구시는 2월 21일부터 28일까지를 ‘대구시민의 날’로 새롭게 정했다. 국채보상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고양하고 시민이 직접 느끼게 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대구시민의 날 행사가 모두 취소됐다. 아쉬움은 크지만 이 날의 의미만은 한번쯤 새겨 보는 것도 좋겠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