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 대학 레이먼드위버 교수에게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독서량이 대단하다고 소문난 위버 교수가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는지 알아볼 속셈으로 교수를 찾아온 겁니다. “교수님이 이 책을 읽으셨는지 궁금해요”라며 학생이 책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교수는 잠시 살펴보고는 “아직 읽지 못했네” 라고 답했습니다.

학생이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이 유명한 베스트셀러를 아직도 안 읽으셨단 말이예요? 나온 지 벌써 3개월이나 지났는데요?”

잠시후 위버 교수는 물었습니다. “자네는 단테의 ‘신곡’은 읽었나?” 학생은 머뭇거리며 아직 읽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나는 3개월밖에 안된 책을 못 읽었지만 자네는 600년도 넘은 책을 읽지 않았군.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네.”

한국 출판계는 1년 동안 무려 4만 종 이상의 신간을 쏟아냅니다. 하루에 100권도 넘는 새로운 책이 세상에 나오고 있습니다. 덩달아 책의 수명도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고 있지요. 한국 사회에서 책을 읽는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독자의 양극화가 심해집니다. 책에서 삶의 자양분을 얻는 분들은 점점 더 고급 독자로 변하고 있고, 원래 책을 잘 읽지 않던 사람들은 아예 책을 손에서 놓아 버리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고전이 좋다, 새로운 정보를 담은 책이 좋다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전은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수백 년 이상 살아남은 책입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고전이 중요한 이유는 지렛대 효과(Leverage Effect)가 크기 때문입니다. 깊고 넓은 지성의 세계를 만나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붙들고 씨름하는 동안 내 생각이 깊고 넓어집니다. 정보를 담은 책들은 수월하게 이해할 힘이 생깁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