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리

퇴락한 절집의 돌계단에 오래 웅크리고

돌의 틈서리를 비집고 올라온

보랏빛 제비꽃 꽃잎 속을 헤아려본다

어떤 슬픔도 삶의 산막 같은 몸뚱아리를

쉽사리 부서뜨리지는 못했으니

제비꽃 꽃잎 속처럼 나 벌거벗은 채

천둥 치는 빗속을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내 몸을 휩싸는 폭죽 같은 봄의 무게여

내가 부둥켜안고 뒹구는 이것들이

혹여라도 구름 그림자라고는 말하지 말아라

네가 울 때, 너는 네 안의 수분을 다하여

울었으니

숨 타는 꽃잎 속 흐드러진 암향이여

우리 이대로 반공중에 더 납작 엎드리자

휘몰아치는 봄의 무게여

대적광전 기우뚱한 추녀 또한

뱃고동 소리로 운다

시인은 어느 봄날 퇴락한 절집의 돌층계 아래에 핀 제비꽃을 들여다보며 그 제비꽃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환상에 빠지게 됨을 본다. 어떤 슬픔도 삶의 산막 같은 몸뚱아리를 쉽사리 부서뜨리지 못했다고 그래서 종종걸음으로 빗속을 달려왔다고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에서 최선을 다해 생의 험로를 달려오면서 슬픔을 이겨냈다는 자기 위안의 마음을 제비꽃과 동일시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