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br>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전 경북지방경찰청장

죽음 앞에는 모든 이들이 경건합니다. 원수처럼 싸우던 형제도 부모의 상사(喪事)를 계기로 화해하기도 합니다. 혼사는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 가는 것이 부자연스럽지만 상사에는 초대받지 않더라고 가게 됩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그만큼 다른 어떤 일보다 엄숙하고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분의 상사를 호상(好喪)이라 합니다.

호상을 치르는 상갓집은 때로는 잔칫집 분위기같이 떠들썩하기도 합니다. 호상이라도 황망한 죽음을 맞이한 슬픔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하는 유족의 마음은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문상객은 복장에서부터 언행에 경건함을 잃지 않아야하는 것이 기본예의입니다. 장례의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가정에서 이뤄지던 장례식이 결혼식처럼 식장에서 이루어져 상갓집이라는 말이 틀릴 수도 있겠습니다. 문상 후 모처럼 만난 지인들끼리 새벽까지 이어지던 화투판도 사라졌습니다. 건전한 장례문화로 바뀐 것입니다. 문상은 고인이나 유족과의 인연으로 하게 됩니다.

문상객의 규모나 면면이 죽은 자나 유족의 사회적 지위를 가름하게 합니다. 문상은 고인과 유족에 대한 추모와 애도행위입니다. 더하여 얽히고설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사회관계망이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얽음으로 함께 자리하면서 고인에 대한 추념보다는 그동안 바쁜 사회생활로 못다한 문상객끼리 만남의 장이 됩니다. 세상살이 이야기 경연장이 됩니다. 직장 상사, 친구, 거래처 등 스펙트럼이 넓은 만남의 장입니다. 얼마 전 모 기관의 사람들이 상갓집에서 업무적인 견해로 상하간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상갓집에서 가족끼리 언쟁이 일거나 죽음에 대한 부당함이나 억울함으로 유족이 고성을 지르는 일은 가끔 있습니다. 그런데 문상객으로 온 사람들이 말다툼을 해서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아는 기관의 고위 공무원들이었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반영하듯 소속 장관이 힐난을 하며 경고를 할 정도였습니다. 공적인 일이라도 사석에서 논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와 장소가 분명히 있습니다. 사회적 민감 이슈에 대해 감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고성으로 장례식장에서 말다툼을 했습니다. 특종을 놓친 언론은 후속 기사를 위해 장례식장에 뒤늦게 뛰어들었을 겁니다. 망자가 누구인지? 말다툼을 한 사람과 어떤 관계인지? 당시 상황은 어떠했는지 등등. 조용하고 경건해야할 상갓집이 북새통이 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참 개가 웃을 일입니다. 상을 당한 유족은 그 기관과 관련된 사람일 것입니다. 경건하게 추모해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남의 상사를 망치는 행위를 했습니다. 말다툼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어이없는 일입니다. ‘상가지구(喪家之狗)’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북적되며 드나드는 상갓집 구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개라는 말입니다. 춘추전국 시절, 노력과 재능에도 불구하고 알아주지 않는 공자의 처량한 처지를 빗댄 말입니다.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을 상갓집 개 취급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하찮게 취급받는 상갓집개로부터 한 소리 듣게 되었습니다.

“잠 좀 자게 남의 초상집에서 쌈질하지 마시요. 왈 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