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사 대광전을 지키는 아름다운 뜰. 수정사는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420에 위치해 있다.

첫눈이 내린다. 잔디밭에도 집 앞 상수리나무 가지에도 하얗게 눈이 내린다. 전원을 적시는 설경을 사진에 담아 친구에게 보냈다. 며칠 간의 해외 연수로 잠은 설쳤다던 그녀가 푸석한 목소리로 절에 가자고 제안한다.

방점 찍히듯 남아 있는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흔쾌히 집을 나섰다. 생각이 많고 소심한 나와 달리 그녀는 늘 적극적이고 대범하다. 눈은 녹고 하늘은 무심히도 맑지만 모처럼의 수다가 눈꽃처럼 화사하다.

“저 산에 묘를 쓰면 후손이 큰 부자가 되지만 마을에는 심한 가뭄이 든다네. 그래도 기어코 밤을 틈타 몰래 묘를 쓰고, 마을 사람들은 화가 나서 오물을 갖다 뿌리고…. 지금도 산에 가면 오물을 뿌린 구덩이가 남아 있대.”

차가 금성산을 끼고 달릴 때, 친구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고단하던 시절의 어두운 탄식들이 들릴 것만 같은데 산은 늠름하고 기품이 넘친다. 잘 생긴 기암괴석이 뿌리를 박고 있는 명산이다. 길은 비봉산과 만나는 지점에서 끝이 났다. 금성산과 비봉산 그 사이 계곡을 끼고 수정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늑하다.

고운사 말사로 신라 신문왕 때 의상이 창건한 절, 동국여지승람에는 수량사(修量寺)라고 소개된 절이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이 머물며 승병의 보급기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조선 헌종 때 대광전만 남기고 불에 탄 것을 뒤에 중수하였으며, 월산 스님과 탄허 스님 같은 대선사가 머무시기도 했다. 이 지역의 불자들에게는 성지처럼 사랑받는 절이지만, 내게는 친구의 유년을 담고 있는 곳이라 더 특별한 곳이다.

수년 전 동짓날, 그날도 눈이 왔다. 불자인 그녀는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팥죽을 먹였다. 좋은 곳이면 어디든 나를 데리고 가는 친구가 있어 절집은 더 편안했고 팥죽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눈 쌓인 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는 환한 미소와 함께 커다란 대접에 팥죽을 떠주던 공양주보살의 후한 마음이 아른거린다.

금성산의 기운이 약수로 변하여 사시사철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수정사(水淨寺), 오늘도 절의 입구에는 약수를 받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래 된 벚꽃나무 한 그루와 돌에 새겨진 약사여래불이 일주문을 대신한다. 크기와 높이가 다른 돌들이 어깨를 맞댄 채 운치를 더하고 앙상한 벚나무 그림자와 낮달이 우리를 경내로 이끈다.

다행히 절은 변화의 물결을 비켜나 소박한 고졸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고향집을 찾아온 듯 포근하다. 대광전을 받치는 돌너덜을 연상케 하는 돌무더기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걸작이다. 새파란 이끼 옷을 입은 돌들이 부처님을 모시는 수미단처럼 주법당과 나무들을 받쳐주고 있다. 이 질박하면서도 이색적인 풍경은 말더듬이 박 처사의 불심이 담긴 역작이라고 한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나는 법당에 들어가는 것조차 잊고 요사채 마루에 걸터앉아 돌무더기를 바라본다. 박 처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아는 이가 없다. 분주히 경내를 오가며 궂은 일을 하는 그의 젖은 목덜미와 활짝 열린 법당문 안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가 한 편의 영상처럼 흐른다.

땔나무와 잡일, 절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묵묵히 돌을 쌓아올렸을 박 처사의 불심을 생각한다. 그는 전생에 조금은 게으르고 절밥만 축내는 불목하니였을지도 모른다. 고단한 몸 하나 절집에 얹혀살면서 무슨 소원이 그토록 간절했을까? 돌무더기 옆에 시멘트 옷을 입고 서 있는 수정 같은 샘물은 알고 있으리라. 큰 법회나 예불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는 날마다 염불소리 들으며 업을 씻어 내렸고, 내면에는 종소리 같은 평화로움을 그를 즐겁게 했으리라. 오래된 돌무더기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준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대광전을 향해 나는 박 처사를 생각하며 가운데로 나 있는 돌계단을 오른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좁고 가파른 계단은 편리하고 정갈한 것을 외면하고 있는 그대로 세월을 다독이고 있다. 살다보면 묵직한 세월의 힘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감동의 눈시울을 젖게도 한다. 시간의 흔적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주지 스님의 지혜로운 안목도 고맙다.

비로자나 부처님이 봉안되었을 거라 생각했던 대광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신다. 불목하니 박 처사의 외로운 불심이 더해져서 일까. 겨울 법당이 따뜻하다. 불목하니 박 처사에게 숙제처럼 따라붙던 업과 그의 길고 외로웠을 기도가 자꾸 내게 말을 건다. 숨 가쁜 세월 나는 어쩌면 빚쟁이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풀어야 할 이승의 업은 많은데 절간의 풍경은 쓸쓸하고 삭막하다. 공양주 보살 없는 절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불목하니는 이미 사라진 말이며, 불심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물질에 밀려 외면 받는 세상이 되었다. 법당을 두리번거리는 나와 달리 친구는 다소곳이 절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생각보다 몸이 앞서는 친구다.

뒤늦게 나도 오래된 것들을 위해 기도한다. 박 처사의 역작처럼 별 특징없고 평범한 돌도 기도와 정성이 더해지면 아름다워지듯, 우리의 오래도록 이어져온 우정에 감사했다. 사랑 없는 세상에 때때로 우리의 삶이 환해지도록, 수정사 앞뜰에 피는 벚꽃처럼 자비를 베푸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