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인간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음을 자각하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제도다. 그래서 결혼만큼은 매우 성스러운 행위로 여기는 것이 동서양의 일반적 개념이다. 결혼 당사자도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남녀가 결합하는데 동의하고 그를 실천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벌인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될 때까지 행복하게 살라”는 백년해로(百年偕老)가 그것이다.

졸혼(卒婚)은 2004년 일본의 한 작가가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된 신조어다. 결혼을 졸업하다는 뜻이지만 이혼과는 조금 다르다. 혼인관계를 유지하되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자는 것이다. 혼인신고만 유지할 뿐 사실상 이혼에 가깝다. 재산과 자녀문제 등을 고려한 결혼 형태라 볼 수 있겠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37살에 부인과 해혼(解婚)을 했다. 그의 해혼 제안을 받은 부인은 고민 끝에 동의했고 해혼한 간디는 고행의 길로 갔다고 한다. 인도에서 해혼은 그렇게 낯선 문화가 아니다. 결혼의 굴레에서 풀어준다는 뜻으로 사용되며 자유의 몸이 된 사람은 다수가 숲으로 들어가 수행을 한다고 한다. 인도의 종교적 영향이 큰 것으로 본다.

우리도 영화배우 백일섭씨의 졸혼 이야기가 TV에 소개되는 등 졸혼과 관련한 유명인의 사생활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어느 시인은 TV에 출연, “졸혼도 삶의 한 형태”라고 당당히 말하기도 한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이 ‘대구 신중년 결혼생활 실태분석’에 따르면 “졸혼을 해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란 물음에 28%가 긍정적 답을 했다. 남성보다는 여성의 긍정 동의가 더 높았다. 시대가 바뀌어 결혼관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싶다. 하나 이혼, 해혼, 졸혼 등 다양한 삶의 형태가 사회규범마저 무너뜨릴까 두렵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