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구 논설위원
우정구 논설위원

19일 정종섭 의원(대구 동구갑)이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TK 현역의원에서도 불출마 선언자가 최초로 나왔다. 그동안 TK 현역의원들은 보수 세력의 거듭된 불출마 선언 요구에도 그냥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정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당장 면피는 한 셈이 됐다.

그러면 그동안 왜 그들은 버텼을까. 그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대구경북에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확실시되는 분위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과 지역에 대한 푸대접이 가져 온 지역 정치인의 반사이익 부분이다. TK 정치권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또 하나는 핑계로 보일 수도 있으나 자신의 지역구를 이을 예비후보가 모두 약체라는 판단이다. 경선을 붙어도 질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당장 유권자의 눈총은 받지만 조금만 버티면 공천을 거머지고 당선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나보다 모두 못하다는 일종의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대구 출마가 예상됐던 홍준표 전 대표와 김병준 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같은 거물급 인사의 등장이 대구에는 없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호재였던 셈이다. 이와 연관지어 지역에 출마한 예비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참신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대개 전직 국회의원 출신이거나 행정관료 출신 혹은 지방의원 출신이며 그 중에 고령자의 얼굴도 간간이 눈에 띈다.

어쨌거나 TK 현역의원에 대한 보수 세력의 불출마 요구는 당선 가능성이나 예비후보와의 경쟁관계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한국당의 쇄신책의 일환으로 국민의 지지도를 회복하는 해법의 하나로 요구한 것이다. 이미 한국당에서 용퇴를 결정한 다수 의원들은 당의 쇄신에 도움을 주기 위한 용단이라 말하고 있다.

한국당이 죽느냐 사느냐를 심판받는 막중한 선택지의 하나인 것이다. 특히 TK 정치권에 요구하는 용퇴론은 20대 총선에서 잘못된 공천을 받은 수혜자로서 불출마를 통해 당의 쇄신에 기여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김병준 전 한국당 비대위원장은 지난주 대구의 한 포럼 행사에 참석, “서울과 부산, 경남에서 다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잘못된 공천의 수혜자가 많은 대구경북에서 왜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느냐”며 “이 분들이 정리되지 않는 한 문재인 정부의 폭정을 막을 수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대구경북민의 자존심을 구기게 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같은 날 이언주 의원도 “한국당 등 기성 보수 세력이 성찰과 반성을 할 줄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TK 의원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범보수 세력은 한국당의 변신은 물과 물고기, 물통까지 다 바꿔야 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대구경북 현역의원의 분위기는 “나는 아니다”는 생각인듯한 모습이다. 다만 향후 공천 작업이 개시되면 불출마 선언자가 뒤늦게라도 나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버티다 당이 정한 쇄신기준에 의해 공천에 탈락하게 되면 모양새는 구겨질 것이 뻔하다. 현재 한국당은 물갈이 폭을 50%로 보고 있다. 이 기준대로라면 대구는 5명, 경북은 6명의 현역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 당이 대구경북에다 쇄신에 무게를 더 두게 되면 더 많은 물갈이가 가능할 수도 있다.

대구경북 현역의원들이 버티는 모양새의 배경에는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앞서 설명했다. 이 말을 잘 새겨들으면 대구와 경북의 민심이 전례 없이 한국당에 많이 쏠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설적이지만 문 대통령의 거듭된 실정은 대구경북의 민심을 더 똘똘 뭉치게 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대구경북의 민심이 무턱대고 한국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는 다르다. 문 정권 집권 후 진보세력이 보인 일방적이고 독주적인 통치스타일을 통해 많은 학습을 한 후 나타난 변화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당은 지지한다. 하지만 사람은 바꾸라는 요구다. 한국당이 얼마나 지역 민심을 만족시킬지는 알 수 없으나 앞으로 대응하는 과정은 지켜볼만 한 일이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대구경북의 민심은 지금 한국당에 일방적이다. 문 정부의 견제를 위해 과거보다 더 결집력이 좋아질 수도 있다. 지역의 한 인사는 TK 민심에 대해 “어떤 측면에서 더 뭉친 측면도 있다. 한국당이 이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그 힘이 새 방향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새 방향이 민주당은 아니라 본다고 했다.

TK의 민심은 지금은 정중동(靜中動)의 분위기다. 보수통합의 결과에 따라 본격적인 움직임도 예측해 볼 수 있다. 과거보다 결집된 TK 민심이 어떻게 표심에 작용할지 판단하는 것은 아직은 성급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의 하나다. 유권자가 정치 과정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정치 참여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짧은 민주화 과정을 거쳤지만 학습 효과는 늘 높았다. 유권자가 더 똑똑해졌다. TK 표심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