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이념 갈등이 우리처럼 심각한 나라는 드문 것 같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는 서로 상대를 적으로 간주한다. 촛불과 태극기 집회 이후 그 갈등은 더욱 증폭되었다. 대의 민주주의의 불신에서 비롯된 광장 민주주의가 초래한 비극일지 모른다. 보수와 진보 진영은 서로를 부정하고 거부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한다. 자기편은 항상 선이고 상대는 악이다. 자신은 정의이고 상대는 불의이다. 이러한 풍토에서는 국정에 대한 올바른 비판도 경쟁도 있을 수 없다. 네 편 내편이라는 감정의 골만 깊어져 정치판이 어지러워진다.

보수진영의 일반적 편견부터 살펴보자. 보수진영은 항상 자신들만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분단 상황에서 철저한 반공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보수 우익만이 자유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 정치사에서 부패한 보수 권력이 몰락한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이승만 보수 정권의 부정 선거,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는 정권의 종말로 끝나 버렸다. 개혁하지 못한 보수는 결국 부패로 망한다는 교훈이다.

진보진영의 편견도 이에 못지않다. 진보진영에서는 보수를 개혁을 거부하는 방해 세력으로만 간주한다. 보수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며 역사를 후퇴시키는 부패세력으로 치부한다. 진보 진영은 보수를 ‘수구반동’ ‘수구 꼴통’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이 역시 보수의 참 가치를 모르는 편견이다. 진보는 자신들만이 자주성이 강하고 보수는 외세 의존적이라는 독단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사는 급진적 개혁이 떼르미도르의 반동으로 몰락했음을 보여주었다. 지구상에는 개혁과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좌익독재가 무수히 인권을 탄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편견은 어디에서 유래할까. 무엇보다도 한국 정치의 보수와 진보라는 고질적 적대관계가 이를 증폭시켰다. 우리 정치의 여야의 부정적인 네거티브 게임은 편견을 증폭시켰다. 선거의 승자는 정의가 되고 패자는 모든 것을 상실한 결과이다. 이 모순된 정치가 시민사회를 양분시켜 버렸다. 이런 진영싸움에서 중도 온건층은 설 자리를 잃어 버렸다. 이러한 보수와 진보 진영의 편견에는 이 나라 언론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치를 비판하고 견제해야할 언론마저 진영논리에 편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적대적 구도가 시민 사회를 분열시키고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구도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보수와 진영 간의 편향적 시각은 무척 극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를 방치하고 국민 화합이나 통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정당간의 정권 교체도 두 번이나 경험하였지만 정치 문화는 여전히 후진적이다. 우리의 보수와 진보는 하루 빨리 진영논리를 극복하여야 한다. 보수와 진보 정당은 체질부터 개혁하여야 한다. 개방사회의 모든 정당은 이념보다는 실용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극단적 보수와 진보의 논리는 결국 정치적 허무주의로 연결된다.

이 나라 정당은 언제쯤 보수와 진보라는 이데올로기적 허위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