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하 영어 강사

요즘 ‘다꾸’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예쁜 신상 ‘마테’랑 스티커 사느라 두부 20모쯤 되는 돈을 쏟아 부었나 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이 대부분 아닐까 짐작한다. ‘다꾸’는 다이어리 꾸미기를 뜻하고 ‘마테’는 알록달록하게 디자인한 예쁜 마스킹 테이프를 줄인 말이다. ‘다꾸’에 열성을 보이는 10대 청소년이나 20대 여대생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다. 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쓰는 언어에 익숙해진다. 왠지 이런 표현을 쓰면 마음까지 살짝 젊어지는 기분이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작년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푸른색 커버에 2019 숫자가 음각으로 찍힌 다이어리를 구입해 업무를 중심으로 스케줄 관리를 위해 사용했다. 1년이 지난 후 다시 펼쳐본 낡은 다이어리는 흉측했다. 검은색 볼펜으로 찍찍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메모들, 바빴던 스케줄 중심의 건조한 기록들로 가득한 다이어리는 그냥 버린다고 해도 미련을 둘만한 아무런 미적, 정서적 가치도 없었다. 올해는 나만의 가치를 담은 색다르고 예쁜 다이어리를 만들고 싶었다. 일 년 동안 내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낼 예쁜 다이어리를 꾸미기에 의미를 부여하자 부질없는 시간 낭비로 보였던 장난 같은 ‘다꾸’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다이어리부터 바꾸었다. 작년까지 사용했던 푸른색 커버 대신 투명 비닐 커버의 노트처럼 생긴 캐주얼한 다이어리이다. 올해 받은 탁상 달력 속 노란색 뽀글 머리에 큰 눈을 가진 소녀 캐릭터가 사랑스러웠다. 달력을 포기하고 오려내 다이어리 앞. 뒤 표지에 붙인 후 꽃 스티커로 장식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다이어리가 탄생했다. 표지 장식을 끝낸 후 거금을 투자한 스티커를 이용해 월간 계획을 꾸미기 시작했다. 매달 컨셉을 잡아 어울리는 스티커로 전체를 장식하고 기억해야 할 중요한 날은 특별히 눈에 잘 뜨이는 스티커를 붙였다.

1월은 상큼한 출발을 다짐하며 레몬에 다양한 표정을 담은 스티커로 꾸몄다. 개나리색 형광펜으로 ‘좋은 일만 가득해라’ 소망도 써 두었다. 음력 내 생일과 양력 아들 생일이 겹치는 신기한 일이 있어 삼단 케이크 스티커와 빨간 하트 풍선을 쥐고 달리는 소녀 스티커로 꾸몄다.

2월 월간 계획표는 한 편의 추상화다. 단순한 모양에 예쁜 파스텔 톤의 꽃과 나무 스티커를 곳곳에 배치하니 세련된 멋이 넘친다. 화요일 오전의 독서 모임 외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허전해 보이는 2월, 어떤 내용으로 빈칸을 채워갈지 기대 가득하다.

새 생명이 약동하는 3월의 다이어리에는 온통 사슴들이 뛰어논다. 모진 추위를 견디고 생명이 움트는 계절, 사슴처럼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드러난 모양이다. 3월에 있는 아버지 생신을 잊지 말자고 파란 별 스티커를 붙였다. 계절의 여왕 5월에는 다이어리에도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정성껏 꾸민 분홍, 보랏빛 예쁜 꽃 스티커에서 향기가 진동하는 느낌이다. 5월 8일 어버이날 칸에 빨간 하트 스티커를 붙이고 사인펜으로 진하게 눌러쓴다. 사랑해요! 감사해요!

7월 다이어리는 온통 푸른색이다. 화요 독서모임 회원 중 문구점을 운영하는 분이 내가 ‘다꾸’하는 걸 알고 스티커를 여러 장 선물했다. 그중에서 조개, 불가사리, 고동, 유리병 스티커로 시원한 여름 바닷가의 모습을 연출해 본다. 즐거운 여름 휴가가 기다리는 7월, 올여름 휴가는 어디로 갈까? 동남아? 중국? 벌써 마음이 설렌다. 휴가지를 결정하면 그곳 풍물이 가득한 스티커를 사서 꾸미려 한다.

재미삼아 시작했던 다이어리 꾸미기는 점점 의미 있는 일로 변했다. 매달 그달의 컨셉을 잡고 꾸미는 일은 한 달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희망이며 약속을 시각화해 자연스럽게 그날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다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들었다. 소중한 날들을 미리 예쁘게 꾸며 놓았기 때문에 마음 든든하다. 아직 꾸미지 않은 빈칸이 많이 남아 있다. 바라기는 더욱 다채로운 스티커들과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2020 나의 다이어리가 꽉꽉 채워져 소중한 삶의 기록으로 오래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