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세상에 ‘무용한 일’이란 없다

홋카이도의 가장 북쪽 왓카나이시의 방파제. 2015년 일본을 여행하며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묵었었다.
홋카이도의 가장 북쪽 왓카나이시의 방파제. 2015년 일본을 여행하며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묵었었다.

 

남자들의 철없음은 아내의 현명함을 이기지 못한다

중국 칭다오에서 포르투칼 렐루 서점까지… 각국의 서점 투어

아내의 응원 힘입어 허락된 여행길, 오토바이 정비에 짐을 꾸린다

욕심을 버리고 고생을 줄이려 싼 짐 꾸러미들 속 뺄 수 없었던 공구들…

불혹에 계획한 여행을 10년이 걸려 꿈을 이루다

노트와 국가 식별 스티커. 노트북도 카메라도 따로 챙기지 않았다. 노트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기록하고 사진을 찍었다.
노트와 국가 식별 스티커. 노트북도 카메라도 따로 챙기지 않았다. 노트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기록하고 사진을 찍었다.

◇독만권서 행만리로… 불혹의 꿈

불혹이 되면 1년 동안 여행자로 살겠다는 꿈을 꾸었다. 서른일곱 살 되던 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선 인생을 다시 설계했다. 3년 후 마흔 살이 되는 해엔 지금까지 삶을 완전히 내려놓고 다시 출발선에 서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가 바로 헌책방을 여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행만리로(行萬里路)’였다.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여행하라는 오래된 중국 격언이다. 송나라 학자였던 소철이 말했다고도 하고 명나라의 명필로 이름을 날렸던 동기창의 글에 나온다고도 하나 정확하진 않다. 누가 말했든 그게 무슨 대수랴. 만 권의 책과 만 리의 여행은 인생의 중용을 깨닫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라 생각했다.

책으로 쌓은 지식과 몸으로 익힌 경험이 조화를 이뤄야만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옛 중국사람이 여덟 자로 줄여 말한 것뿐. 평생 만 권의 책을 읽기란 힘든 일이니 그만큼 책을 쌓아둔 헌책방을 여는 것으로 대신하지만, 만 리 여행을 떠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불혹이 되면 더는 다른 이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 다짐했고 실천에 옮겼다. 그러기에 마흔은 그렇게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나이였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다 해도 아내의 허락을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랴. 남자들의 철없음이 아내의 현명함을 이기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내는 항상 나의 철없음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아마 오래 전에 포기한 것일 수도. 1년을 기한으로 잡고 떠났던 첫 번째 배낭여행(2013년, 7개월)도,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을 돌아보고 온 그때도(2015년, 1개월), 그리고 이번 유라시아 횡단 여행(2019년, 4개월)을 떠날 때도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다. 앞서 떠난 여행과는 다르게 이번엔 “보험은 들어놓고 떠나라”고만 했을 뿐이다.

2013년 여행의 종착지는 포르투갈 포트투에 있는 렐루 서점이었다. 1년 동안 중국 칭다오에서 시작해 렐루 서점까지 육로로만 이동하며 서점들을 둘러볼 계획이었다. 행만리로, 처음 떠났던 그 여행은 사정이 생겨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7개월 동안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거쳐 싱가포르까지 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캘커타 대학 앞에 있는 책 시장을 보기 위해 인도 비자를 준비할 즈음 집으로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가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었고 아내는 언젠가 다시 떠나라는 말로 위로했다. 결국 렐루 서점까지 가는 여정은 아쉽지만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나고서야 렐루 서점을 향해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때는 버스와 기차로 이동했으나 이번에는 오토바이로 움직였다. 렐루 서점은 목적지이자 반환점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오로지 로시(중고로 구입한 오토바이 2011년형 BMW F650G의 애칭, ‘로시난테’의 줄임말)에게 의지해야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떠나기 위해 꼬박 3년 동안 꿈을 꾸며 준비했다.

 

장거리 오토바이 여행에는 정비 공구가 필수. 다른 짐은 줄여도 공구를 줄일 수는 없었다.
장거리 오토바이 여행에는 정비 공구가 필수. 다른 짐은 줄여도 공구를 줄일 수는 없었다.

◇떠나는 날까지 오토바이를 정비하고 짐을 줄이다

출발(5월 12일) 보름을 남겨두고 오토바이 통관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보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오토바이(자동차도 마찬가지)를 가져가기 위해선 여러 서류가 필요했다. 임시 수출입신고서부터 세관 사전 신고서까지 모두 일곱 가지 서류를 갖추어야 했다. 선사 담당자에게 ‘문제없다’는 메일을 받고 나서야 드디어 떠난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보름을 남겨 놓고도 로시는 여전히 정비 중이었다. 낡은 오토바이다 보니 이것저것 손 볼 것이 많았다. 3년 전 일본 책방 여행을 위해 800만 원을 주고 구입한 로시는 유라시아 횡단을 앞두고 계속 말썽을 부렸다. 주행 중 엔진이 꺼지는 증상(stalling)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전문가에게 맡기면 좋겠지만 비용도 시간도 문제였다. 같은 기종을 타는 해외 라이더들이 남긴 해결 방법을 찾아 부품을 구하고 직접 수리할 수밖에 없었다.

엔진 실속의 원인이었던 연료 펌프부터 스파크 플러그, 에어필터, 배터리, 엔진오일... 특별한 장비 없이 교체할 수 있는 건 시간 날 때마다 해두었다. 전문가에게 맡기면 비용도 만만치 않거니와 내 손으로 가능한 것 직접 해보아야 여행 중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떠나기 전까지 아파트 지하주차장 구석에서 오토바이 카울(플라스틱 덮개)을 몇 번이나 벗겼다 다시 조립했는지 모른다. 서울 성수공업고에서 오토바이 기본 정비를 배운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정비 기술을 익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2017년 성수공업고에서 매년 실시하는 ‘시민을 위한 이륜차 정비교육’을 신청해 2박3일 동안 수업을 들은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스스로 이동수단을 움직여 여행을 떠나야한다면 이동수단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충분히 갖출수록 중도 포기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어쨌거나 떠나는 날까지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로시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짐을 줄이는 것도 큰 과제였다. 여행을 하는데 그리 많은 물건이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여행자는 항상 일어나지 않을 일, 의외의 경우를 걱정하며 더 많은 물건들을 챙긴다. 여행의 경험이 늘수록 챙겨갈 물건에 대한 욕심이 줄어들었다. 인간은 부족한 상황에도 적응하기 마련이다. 많이 사용하지 않을 물건을 줄이는 대신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는 걸 이전의 여행 경험을 통해 충분히 몸으로 깨달았다. 옷가지, 캠핑용품은 물론이고 특히 전자제품은 최대한 가져갈 물품에서 제외했다. 노트북도 카메라도 과감하게 뺐다. 기록은 스마트폰과 수첩이면 충분했다. 물론 더 좋은 사진과 영상을 찍고 싶은 욕심은 있었으나 그 욕심이 고생으로 이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최대한 짐을 줄였지만 만약의 사태, 오토바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필요한 공구는 줄이기가 힘들었다.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떠나기 전 장거리 여행에서 문제가 생긴 적은 없지만, 가까운 곳을 다녀오며 난감한 상황을 만났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공구가 있었으면 바로 해결할 수 있을 걸 오랜 시간 불편을 감수하며 달린 적도 있고, 결국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필요한 정비 공구는 경험 많은 라이더들이 추천하는 것으로만 추렸다. 아마존(www.amazon.com)이나 레브질라(www.revzilla.com) 등에서 장거리 오토바이 여행자를 위한 ‘정비 공구 세트 상품’을 팔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목록을 만들어두고 꽤 오랜 시간을 두고 중복되지 않게 하나씩 준비했다.

 

출발 전까지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났다. 주행 중 엔진이 꺼지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출발 전까지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났다. 주행 중 엔진이 꺼지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 “쓸데없이 뭐한다고 고생을 사서 하네”

출발 전까지 무용(無用)한 일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유용(有用)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떠난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을 때 “쓸데없이 뭐한다고 고생을 사서 하네”라고 하셨으니 유라시아 횡단 여행은 무용한 일. 대륙 횡단 여행자가 되겠다는 꿈은 무용한 일이고 그 꿈을 위해 글값을 받고 여백을 채우는 일이 유용한 일인지는 딱 부러지게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에서 “무용이 유용을 앞선다”고 잘라 말했던 철학자 기시다 슈의 주장은 믿었다. 어쨌거나, 유용이든 무용이든 따질 것도 없이 텐트 생활을 최대한 피하려면 ‘당장 돈이 되는 일’(사람들이 유용하다 믿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결국 무용이 앞선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전날까지 컴퓨터에 매달려 있어야만 했다. 따져보면 스물셋 의대생이었던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낡은 영국 노턴(Norton)제 ‘포데로사’를 타고 4개월 동안 남미를 여행하며 남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도 무용의 기록이었다. 쿠바를 해방시키고 볼리비아 밀림에서 그는 혁명가로 죽었고, 포데로사와 함께 달린 기록은 유용한 일에만 가치를 두는 사람들에게 무용의 우위를 가르쳤다.

엔진과 심장의 고동을 맞추고 온몸으로 바람을 가르는 오토바이 여행의 매력, 아니 마력은 그 어떤 여행의 방식보다 강력하다. 혈관의 말초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강력한 무용의 각성제라고나 할까. 무용한 일일수록 끊임없이 되뇌지 않으면 실행에 옮길 수 없다는 걸 안다. 떠나지 못할 조건들은 충분히 차고 넘치지만, 떠나야 할(떠나고 싶은) 이유가 딱 한 가지만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은 2013년에 떠났다 중간에 멈추었던 일곱 달 여정의 연장이었다. 서른일곱에 세웠던 계획을 이어가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떠나기 전날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에 마지막 문장으로 썼던, 캄보디아 프놈펜의 디스북스 서점에 걸려 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다시 되새김했다.

“길 떠나지 않는 이에겐 세상은 한 페이지 읽다만 책일 뿐.”(The world is a book people who don’t travel only get to read one page.)   /조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