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종 목

밤이 되면 그 소리가 잘 들린다

냉장고를 돌리는 모터가 밤새 웅웅거리고

꾸루룩, 꾸루룩 누군가의 빈 창자를 채우듯

파이프 속으로 물 흘러가는

아아 저 소리

냉장고 뒤에는 바퀴벌레들이 산다

지들끼리 밤새워 음모를 꾸미고

낮밤을 가리지 않고 번식하며

저희들의 영토확장을 꿈꾼다

따뜻한 모터 곁에 모여서 키득거리고

냉장고 속의 계엄령을 즐기며

(시들지 않은 정신들은 모두 감옥에 있어요)

호시탐탐 우리들의 방심한 생활을 노린다

냉장고 뒤에는 바퀴벌레들이 모여 산다

시인은 백해무익한 바퀴벌레의 생태를 얘기하면서 우리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 혹은 민족현실을 떠올리고 있음을 본다. 바퀴벌레들이 냉장고 뒤에서 키득거리며 호의호식하며 즐기는 것은 청결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냉장고 안 같은 감옥에 격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르고 정직한, 용기 있는 민중들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고, 그것을 쟁취하고 구현하기 위해 깨어있어야 한다는 시인의 준엄한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