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이야기’

‘결혼 이야기’ 포스터.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은 상대의 장점을 나의 목소리를 통해 보여준다. 알고 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의 괴리는 그 독백이 끝나는 시점부터 균열을 일으킨다. 함께 살아가야할 수백 가지의 장점들. 그 속으로 함께 살아가지 못할 하나의 단점이 고개를 들고 일어난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는 분명한 장점들 속에서 흐릿한 단점이 점점 명징해지는 시간을 그린다. 그리고 하나였던 것이 분화되고 세분화되면서 모든 장점들을 깡그리 무너뜨리고 ‘이혼’이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의 영화다.

처음 시작은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사랑했으며 그 결과로 무엇을 남겼는가 아름답게(?) 헤어지는 것으로 약속한다. 하지만 현실은 누가 누구를 더 사랑했는가로 끝나지 않고, 누가 누구를 더 미워하느냐의 싸움으로 진입한다. 법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혼의 과정을 준비하던 부부 사이에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이혼은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와 서로를 괴롭힌다. 아름다운 이별이 치열한 ‘승리’의 문제로 바뀌고, 감추어야할 것과 드러내야할 것들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함께 살아왔던 지난날은 어지럽고 서로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누가 더 사랑했었던가’는 이제 누가 더 상대의 치부를 까발릴 용기, 더 솔직한 용기를 가졌는가의 척도가 된다. 사랑의 깊이는 그대로 누가 더 상대방에게 좀 더 큰 상처를 안겨주느냐의 문제가 된다.

뉴욕에서 시작된 영화는 LA로 옮겨간다. 결혼이 시작된 뉴욕에서 결혼이 끝나고 영화가 끝나는 장소 LA가 된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 양극단의 물리적 거리만큼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다. 이는 영화 속에서 아들 헨리의 양육권을 다투게 되면서 법적 주거지인 뉴욕과 현실의 실거주지인 LA가, 과거의 삶과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규정되어지는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집이, ‘누구’의 집이 되는 과정이며, ‘너’의 집과 ‘나’의 집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통해 잔잔한 감정에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부부는 ‘소송’이라는 사법제도를 활용함으로써 감성적이었던 관계가 냉정한 이성적인 관계로 돌아서고, 주관적이었던 것들은 모든 객관적인 것들로 치환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기 위해 개인의 섬세한 감정을 쓰다듬기 보다는 거두절미하고 냉정하리만큼 물리적인 객관성을 유지할려고 한다. 법의 특성에 의해 상대의 감정에 이입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나의 현실적인 이익에 충실하도록 강요한다.

개인적인 선택이겠지만 그래서 후련하고 만족하느냐의 깔끔한 결과로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 찰리가 아들 헨리와 장난을 치고 하던 작은 칼. 그 칼이 한 번의 실수로 어떤 상처를 남기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은 ‘결혼 이야기’의 뒷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소한 사실들은 변호사의 변론을 통해 날카로운 날을 가진 무기가 된다. ‘우리’였을 때,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너’와 ‘나’가 됐을 때 상처가 되어 두고두고 남는다.

‘이혼’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영화제목을 ‘결혼 이야기’라고 한 것은 반전이나 역설의 의미보다는 두고두고 다스리고 지니고 가야할 상처, 시작보다 중요한 마무리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 이혼과정에 사랑, 양육, 과거와 미래, 성취와 돈의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등장하고 얽힌다. 그렇다고 치졸하거나 막장으로 치닫지 않는다. 어느 부분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섬세하며, 자연스럽다. 다양한 요인들이 등장하지만 복잡하지 않고, 날카로움이 오고가지만 불쾌하지 않다. 슬프지만 애처롭지 않으며, 끓어 오르지만 태우지 않고 은은하다. 탄탄하게 짜여진 내용 속에 예술영화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아담 드라이버와 폭넓은 연기변신을 보여주고 있는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야기의 현실성, 그 현실성을 더해주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누구나 공감할 ‘이혼’을 다루는 ‘결혼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김규형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는 서울·부산 일부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