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 시인
김현욱 시인

요즘 렘브란트 그림에 푹 빠졌다. 유명한 그의 자화상보다는 ‘명상 중인 철학자’(1632년)를 보고 한눈에 매료되었다. 구두장이 눈에는 구두만 보인다더니 명상 초보 눈에는 명상만 보이는가보다.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년), ‘야간순찰’(1642년)은 렘브란트가 전환기에 그린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밝음과 어둠의 차이가 분명하지만, ‘야간순찰’은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와는 달리 각각의 인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야간순찰’은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듯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다르다.

바로크 양식을 기반으로 한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는 의상에서 볼 수 있는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 빛과 어둠의 대비가 명확하다. 시신과 튈프 박사, 수강생들을 충실히 표현했다. 비스듬한 다이아몬드형 구도는 해부학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긴장을 잘 드러낸다. 이에 비해 ‘야간순찰’은 렘브란트의 독자적인 구성과 표현이 엿보인다. ‘야간순찰’은 빛과 어둠 속에 인물들을 차별화하여 표현했다. 어떤 인물을 조명을 받은 듯 굉장히 환하고 자세히 그린 반면에 어떤 인물은 어둠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게 표현했다. 가로 4m, 세로 3m 이상의 거대한 크기인 ‘야간순찰’은 등장인물인 군인들이 각자 초상화 비용을 부담해서 제작되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충실히 그리지 않고 새롭게 연출하여 단순한 집단 초상화를 넘어 인물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렘브란트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을 보면 태양이 떠오르는 여명에서부터 마지막 빛을 발하고 사라지는 하루의 삶을 인생에 비유하여 표현한 한 편의 연극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는 ‘명상 중인 철학자’에서도 깊이 있는 공간을 상당히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부드러운 색채가 햇살의 느낌을 잘 담아냈다. ‘명상 중인 철학자’에서 빛은 정신을 밝히고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람자는 철학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화면에서 보여주는 빛과 그림자의 명암에서 인생의 즐거움과 슬픔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제 나도 습관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창문으로 햇빛이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바라본다. 빛이 방뿐만 아니라 내 영혼으로도 스며드는 느낌을 받는다. 빛의 신비한 기운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옛 성인들은 이른 아침 동녘을 바라보고 앉아 일출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명상 중인 철학자’를 보면 렘브란트가 왜 ‘빛의 화가’인지 알 수 있다.

렘브란트의 ‘엠마오의 저녁식사’(1629년)에서도 빛과 그림자의 사용이 좀 더 극적으로 강조되었다. 예수의 얼굴이나 몸 같은 세부적인 부분은 어둡게 묘사하고 예수의 뒤에서 비추는 빛만 강조하고 있다. 예수 앞에 순례자를 그리지 않고, 아주 깊은 어둠으로 표현하여 관람자가 그 자리에서 예수를 마주하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올해는 도서관만큼 미술관에도 자주 갈 작정이다.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제로(ZERO) 전시회가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