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조경산시장
최영조 경산시장

모든 것에는 뿌리(시작)가 있다. 경북의 3대 도시로 우뚝 선 경산시의 뿌리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압독국(押督國)이다. 압독은 경산시 압량의 옛 지명으로 예로부터 압량벌이라고 불린 넓은 들에 풍수해가 적고 일조량이 많아 사과 재배 등 농업지역으로도 최적의 조건을 갖춰 2천년 전부터 압독국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압독국과 압량소국(押梁小國)으로 여러 번 나타나며 6세기경 신라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해 직접 다스리기 전까지 대략 600여년 동안 경산지역에 있었다. 특히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 김유신이 압량주(州) 군주였다는 사실이나 불교를 일으킨 원효의 태생지가 압독이라는 기록을 보면 압독국이 망하고 나서도 이곳이 신라의 요지였음을 보여준다.

영남대 맞은 편 넓은 구릉지역에 있는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과 압량면 부적리·신대리 고분군은 압독국의 유적이다. 이들 유적은 1982년을 발굴을 시작으로 실체가 밝혀졌으며 지금까지 1천700여 기의 고분과 마을 유적, 토성(土城), 소택지(沼澤池) 등이 발굴되어 사적(史蹟) 제516호로 지정되었다. 지난해 5월에는 부적리 고분군도 가치를 인정받아 압량면 부적리 331번지 일원 28필지 3만6천784㎡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임당유적에서는 금동 관, 은제 허리띠, 말 갖춤, 토기 등 2만 8천여 점의 유물과 인골, 동물 뼈, 생선뼈 등 당시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다양한 희귀자료가 출토되어 한국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임당유적의 가치가 소중한 이유는 고분뿐만 아니라 압독 사람들의 당시 생활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생활 유적이 함께 발굴되었다는 점이다. 유물을 통해 압독국의 최대 범위는 국읍(國邑)인 임당유적을 중심으로 과거 경산군 전체(대구에 편입된 고산, 안심 포함)와 대구광역시 불로동 일대까지를 포함했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왕성한 세력을 떨친 고대국가였다.

지난해 하양 양지리에서도 매우 중요한 유적이 잇따라 발굴·조사되었다. 하양 양지리에서 발굴된 목관묘에서는 2천년 전 경산지역 최고 권력자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중국제 거울, 청동검을 비롯한 화려하고 소중한 유물이 쏟아져 많은 주목을 받았다. 경산시는 이러한 독창적이며 찬란한 압독국의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연구·전시·활용할 ‘압독국 유적 전시관(가칭)’을 건립한다. 경산시 임당동 632에 191억원을 들여 2024년까지 준공 목표로 내년 상반기 내에 건립공사를 착공할 계획이다. 2018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 공립박물관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에서 ‘적정’ 사업으로 선정되며 사업추진의 탄력도 확보했다. 압독국 유적 전시관은 압독국만이 가지는 독창적이고 풍부한 문화자원을 전시해 지역의 문화유산과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줄 것이다. 시는 유적 전시관을 중심으로 압독국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정비 복원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 청년 지식놀이터와 청년희망 Y·STAR프로젝트 등 청년문화 거점을 육성해 옛 문화와 청년문화가 어우러지도록 한다.

또 압독국의 풍부한 문화자원을 연구·활용하기 위해 올해 영남대 박물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압독국 문화유산 연구·활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성과물로 임당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인골을 이용해 1500년 전 압독국 귀족 여인의 얼굴을 복원하는 데 성공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압량지역은 지금도 경산의 중심지역이며 개발이 예정된 대임지구 택지개발과 어우러지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뿌리를 잊는 것처럼 불행한 일도 없다.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가 있고 현재가 있어야 미래가 존재한다. 인구 30만 명을 앞두고 있으며 자립형 도시를 추구하는 경산시민들은 역사 속에 깊게 뿌리박은 압독국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하고 후손에게 좀 더 많은 지식과 자료를 남겨야 한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경산시의 자치단체장으로 지역 역사 알리기와 한 번 더 도약하기 위한 시정을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