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때마다 인생에 대한 느낌이나 인상은 아주 달라지는 것 같다.

스무살 때 같으면 사람은 결코 죽음에 순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될 때가 많다. 젊음이, 생의 기운이 몸과 마음 안에 가득차 흐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으랴.

삼십대때야말로 한국인들로서는 가장 의미심장한 시절이라고 생각된다. 십대 때까지는 학교에서 철학조차 가르치지 않으니 이십대 들어서 겨우 인생에 눈뜨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삼십대 되어야 이제부터 진짜 인생을 살기 시작하는 때문이다.

꿈과 욕망은 큰데 자신의 현실적 위치가 그에 상응하지 않아서 괴롭디 괴로운 인생을 곱씹는 때가 바로 삼십대요, 사십대는 어떻게든 자신의 사회적 위치며 인생의 의미 같은 것, 사명이나 운명 같은 것에 눈떠 조금씩 내면화하고 그 의식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그러니 결실을 이루려면 사십 대에 열심히 어느 한 방향으로 내달리지 않으면 안되는 때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오십대에 이르는데, 이제는 마음도 몸도 평온을 찾을 때가 왔다고 봐야 한다. 철모르는 몽상도, 미친 듯 내달리는 꿈도, 현실에 착근시키려는 실행도 이쯤 되면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인생의 자기 몫이 어느 정도쯤 되는지 스스로 파악할 수도 있는, 바로 그 나이가 오십대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내 생각이지만 이쯤 되면 삶을 삶답게, 그 의미에 치중해서 천천히, 조용히, 차근차근 살아야 할 때이건만, 아뿔싸, 이때처럼 또 다른 인생의 고비가 없다. 이름하여 삶의, 생명의 위기가 뜻하지 않게 불어닥치는 때도 대체로 이 오십대인 것이다.

텔레비전이라면 뉴스조차 담 쌓은지 오래인데, 요즘 때아니게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이것저것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다.

자연으로 돌아가면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들, 생명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마지막 찾아든 산 속에서 새로운 삶을 얻는 경우를 자주 본다. 과연 자연은 인공적 치료 대신에 진짜 회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자연으로 돌아가라고들 한다. 그러나 정작 무서운 병에 걸리면 자연이, 산속이, 피톤치드가, 높은 지대의 공기가 사람을 살릴 수 있을지 의심을 품게 된다.

서양의학을 중심으로 발전한 현대의 암 치료법은 세균학적인 시각에서 출발한 한계 탓에 사람을 ‘살리려고 죽이는’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자연 치료만이 살길이라는 말도 들린다.

비단 암의 문제만이 아니라, 요즘 들어 이대로는 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위기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세속의 오염된 공기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 깨끗한 공기로 숨쉬며 기름때를 벗겨내야 할 것 같다고나 할까. 올 만큼 왔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야 살 것 같기도 하다.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겨울 나날들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