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만 수

은빛 수은 찰랑거리는 유리막대로

내 허약한 열정의 깊이와 그 세기를 재고 주사를 넣는다

탈지면이 여는 눈부신 길

창 너머 늦은 가을 숲으로 뻗어가는 것

환하게 보인다

몸속으로 반짝이며 굴러오는

저 물결

토마토 같은 피 한 대롱 뽑고 누워

눈 맞춘다 뿔테안경 속 찌그러지는 공의(公醫)의 눈

나를 굴리고 가던 한 웅쿰 바퀴들 나사들 서서히 녹슬어

비칠거리는 걸음이 무겁단다

폐경과 중독

부속들이 풍화와 해체의 속도가 빠르고

여러 곳의 부식이 진행 중이어서

간신히 가동되고 있다고 일러준다

유통기간이 다되어가는가 보다

공터 파밭 지나 오줌을 누고 집으로 간다

그녀가 또 묵은 대추를 고고 있는 집으로

철거덕거리며 가야 한다

야망과 열정으로 채워졌던 청춘의 시간은 몸도 정신도 건강했지만, 나이 들면서 서서히 갈등과 좌절, 불균형과 패배감이 깊어지면서 의욕도 자신감도 줄어들고 건강하던 몸도 낡고 조금씩 고장 나고 무너져가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새벽 먼동을 밀며 밖으로 나가는 일보다 저녁노을이 번지는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아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