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탈로치가 어렸을 때 스위스는 정치가들의 싸움으로 몹시 어지러웠습니다. 농촌은 피폐했고 도시는 타락해 있었지요. 아버지는 정직한 의사로 돈보다 고통스러운 환자를 치료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러다 그만 병을 얻어 죽음에 이릅니다.

죽기 직전 아버지는 가정부 바아베리에게 말합니다. “바아베리, 내 가족들을 지난날처럼 앞으로도 잘 돌봐 주면 좋겠네.”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에 그녀는 “네, 그렇게 하고 말고요. 약속하겠습니다.” 말하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페스탈로치의 나이 다섯 살 때,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형편이 넉넉지 않은 이 집에 남아 궂은 일을 하겠어요?” 모두 수군거렸지만 바아베리는 묵묵히 일했고, 어린 페스탈로치를 친동생처럼 보살펴 주었습니다.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바아베리를 가족처럼 여기며 생활하던 페스탈로치는 자라면서 가슴에 소중한 꿈을 키워 갑니다. “사회는 타락했지만 바아베리처럼 훌륭한 사람은 얼마든지 많을 거야. 나도 어려운 사람을 위해 일생을 바쳐야지.”

어른이 된 그는 타락한 사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길은 정치, 경제도 아닌 교육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당시 억압적인 교육 환경 가운데서 아이들은 체벌과 봉건적 체제 아래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교육 철학이 달랐던 학부모와 교장들로부터 배척당했지만, 뜻을 함께하는 동료와 함께 일절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실물교육과 체험을 통한 진정한 교육을 실천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사상 최초로 교육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단체를 조직하고 투쟁했던 선한 목자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올바른 교육에 헌신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가정부 한 사람의 숭고하고도 희생적인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누구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에 남을지 고뇌하며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2020년이길 소망합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