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

인천공항에서 베트남 하노이의 노바이 공항까지 비행기로 대략 5시간이 걸린다. 베트남은 우리에게 멀고도 가까운 나라이다.

2019 동남아시아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팀이 인도네시아 축구팀을 3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베트남이 60년 만에 동남아시아 축구게임에서 우승한 것이라고 한다. 우승으로 들뜬 베트남에서는 시민들이 수백 대의 오토바이들이 떼를 지어 베트남 국기를 달고 경적을 울리며 시내를 달린다.

작년 2018년 8월 필자는 호치민 벤탄시장 앞에서 거대한 오토바이 물결에 휩쓸린 적이 있다. 2018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경기 4강전 경기가 있던 날로 기억되는데,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이 인상적이었다.

베트남은 한국에게 비즈니스의 나라, 사돈의 나라, 한국은 베트남에게 축구 스승의 나라가 되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팀의 승리비결은 선수들의 체력과 기량, 정신력, 그리고 지역감정의 극복이라고 한다.

베트남은 동서가 좁고 남북으로 긴 나라이다. 남북으로 길이가 1천650㎞에 달한다. 베트남에도 북부, 중부, 남부 사이에 지역감정이 존재한다고 한다. 박항서 감독 이전의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 감독은 선수의 선발과 기용에 있어 출신 지역에 따른 편중이 심했고, 심지어 선수들도 다른 지역의 선수들에게는 경기 중 패스도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항서 감독은 고질적인 관행으로 이어온 지연을 뛰어넘어 실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고 기용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선수들의 체력과 기량은 하드웨어적인 속성이다. 정신력과 지역감정의 극복은 소프트웨어적인 속성이다. 하드웨어적인 속성과 소프트웨어적인 속성을 박항서 감독은 리더십으로 조화롭게 융합하였다.

바야흐로 시대는 소프트웨어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7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는 하드웨어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공단지역 여기저기 높게 솟은 공장 굴뚝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남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와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산업화 시대에는 그것이 맞았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시대에는 소프트웨어적인 사고가 지배한다.

‘소프트(soft)’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부드럽고 조화로운 사고, 함께 어울리는 사고가 바로 소프트웨어적인 사고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정치 리더는 지금 베트남의 박항서 감독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동서의 지역감정을 넘어 화합과 조화 속에서 남북통일의 대업을 이룩할 리더는 부드러운 사고와 혜안의 암묵지, 그리고 포용력을 지닌 자이어야 할 것이다.

바로 ‘소프트 파워(soft power)’‘소프트 거버넌스(soft governance)’ 내지 ‘소프트 카리스마(soft charisma)’이다.